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값싼 요소에도 흔들린 대한민국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공급난 상황인식도 대응도 미숙

中언론까지 韓정부 부실 비웃어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 전락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중국발 요소 품귀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정부가 또다시 사실상의 배급제를 들고나왔다. 지난해 봄 마스크에 이어서 두 번째로 시행하는 사회주의 경제정책이다. 요소 1만 8,700톤의 선적을 뒤늦게 허가해준 중국 정부의 조처에 감동한 대통령 비서실장이 ‘비싼 수업료’를 들먹였다. 국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은 찾아볼 수 없는 경박한 발언이다.

우리가 필요한 요소수의 양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 아니다. 하루 소비량이 60만 ℓ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는 한 달에 7,000톤의 요소를 사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2억 톤이 생산되고 ㎏당 250원에 지나지 않은 값싼 요소의 품귀는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요소 생산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질소·수소·이산화탄소를 고온·고압에서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는 기술은 100년이 넘은 구식 기술이다. 전기와 연료만 있으면 된다. 다만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상당한 환경오염이 발생하지만 넉넉한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요소 생산은 대표적인 개발도상국형 산업이다. 지난 1961년 충주비료에서 요소를 처음 생산했던 우리가 2011년에 요소 생산을 포기해버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제는 중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파키스탄·벨라루스·베트남 등의 국가가 요소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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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순도의 요소는 주로 일본에서만 생산되던 고순도 불화수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값싼 범용 기초화학 소재다. 그런데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에서도 그랬듯이 우리 정부는 현지 사정에 눈을 감고 있었다. 현지의 공관은 물론이고 산업부·외교부·기재부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언론까지 우리 정부의 부실을 비웃었다.

정부의 대응은 달랐다. 죽창가를 들먹이면서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호기와 결기가 사라졌다. 국제 자유무역 체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중국에 변변한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반도체 소재 대란 이후 2조 원을 쏟아부어 소부장 강국을 만들었다던 경제부총리의 호언장담도 허울뿐인 허세였다. 사실은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로 추락해버렸다.

호주에서 2만 7,000ℓ의 요소수를 공수해온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2,700만 원어치 요소수를 공수하기 위해 무려 1억 원이 넘는 항공유를 공중에 뿌려버렸다. 고작 1시간이면 동이 나버릴 정도의 물량을 가져오기 위해 공중급유기를 급파한 것은 국민 기만적인 결정이었다. 국방에 쓰겠다고 엄청난 예산을 사용해 들여온 공중급유기가 정부의 엉터리 정책 홍보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관계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요소수는 고도의 품질이 요구되는 정밀화학 제품이 아니다. 요소의 생산 과정에서 흔히 혼입되는 요소 유도체(바이유레트)·알데하이드와 같은 유기물이나 암모니아는 선택적 촉매환원장치(SCR)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제표준기구(ISO)에 따르면 그렇다. 다만 비료용으로 쓰기 위해 추가로 황(黃)코팅을 한 과립형 요소는 경계해야 한다. 요소수에 반도체·의약품 생산에나 쓰는 값비싼 증류수·초순수를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요소를 비누가 잘 녹는 연수(탈염수)나 생수에 녹이면 된다.

요소의 농도를 32.5%로 만들면 ‘차량용’이 되고 40%로 만들면 ‘산업용’이 된다. 산업용 1ℓ에 생수 반 병(250㎖)을 더 넣어주면 차량용과 똑같은 요소수가 된다. 40도 소주를 두 배로 묽히면 20도 소주와 똑같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소의 ‘농도’ 차이를 ‘순도’나 ‘품질’의 차이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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