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차기 정부, ‘5년 1% 하락 법칙’ 못 막으면 ‘제로 성장’ 늪에 빠질 수도” [청론직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경기부양 반복하면 버블, 구조개혁 없으면 경제 위기

‘잃어버린 10년’ 日 반면교사, 창조적 인적자본 키워야

‘서울대·삼성·행정고시’ 입시·채용 창의력 기준 전환을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 도입하고 교육예산 수술을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가 제로 성장에 빠지지 않으려면 창조적 인적 자본을 키우는 데 국력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여야 대선 후보들은 아직도 구체적 성장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7일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선 주자들과 차기 정부는 한국 경제에 드리운 ‘5년 1% 하락의 법칙’ 저지를 제1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이대로면 차기 정부에서 0%대의 ‘제로 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1995년 이후 우리나라의 10년 평균 장기 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떨어지고 있다’는 법칙을 2016년 제시한 데 이어 최근 펴낸 저서 ‘모방과 창조’에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 성장률 하락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제로 성장에 빠지지 않으려면 ‘창조적 인적 자본’을 키우는 데 국력을 쏟아야 한다”며 “서울대·삼성·행정고시 등 3개 분야의 입시·채용 방식을 창의력 기준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까지 떨어졌다. ‘장기 성장률’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의 하락 추세를 경고해온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가.

△‘진짜 성장 능력’을 알아야 한다. 이를 측정하는 도구 중 하나가 잠재성장률인데 문제점이 있다. 원래 ‘성장 회계’를 이용하는 잠재성장률을 파악하려면 기술 진보율, 자본 증가율, 노동 증가율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기술 진보율 등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가정에 따라 추정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자의적으로 계산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잠재성장률 대신 장기 성장률을 계산한다. 장기 성장률은 누가 계산하든 똑같다. 여러 해에 걸쳐 평균을 내면 위아래로 움직이는 단기 요소가 서로 상쇄돼 진짜 성장률이 나타난다.

-‘5년 1% 하락의 법칙’을 얘기했는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성장률이 8%를 넘었다.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다. 그런데 1990년대 초부터 30년을 보면 장기 성장률이 5년에 1%포인트씩 하락하고 있다. 정권이 지날 때마다 1%포인트씩 떨어지는 셈이다. 지금은 장기 성장률이 1% 중반을 통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 추세가 지속되면 차기 정부에서는 0%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차기 정부의 특정 해에는 역성장도 가능하다. 물론 제로 성장을 막기 위해 강력한 경기 부양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제로 성장을 차차기 정부로 늦출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버블만 더 키울 것이다.

-여야 대선 후보가 확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보다 분배 쪽 담론이 우세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한민국 경제의 제1 과제는 ‘5년 1% 하락 법칙’ 저지다. 제로 성장을 막아야 한다. 제로 성장 시대가 오면 2년에 한 번꼴로 역성장을 하고 많은 기업이 연쇄 부도 사태를 맞으면서 경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과거 경기 부양을 많이 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과잉 투자나 가계부채가 폭발할 수 있다. 절반 이상 근로자의 소득이 감소하고 분배도 더 나빠진다. 복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5년 1% 하락의 법칙’과 제로 성장을 저지해야 한다.

-인위적 부양은 버블을 키운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로 성장을 막을 방법은.

△경기 부양은 ‘5년 1% 하락의 법칙’을 막는 방법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부양만 했고 그러다가 외환 위기를 맞았다. 환란 직후 3년 동안 부양하지 않고 구조 조정을 했지만 그 뒤 다시 부양으로 회귀했다. 정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부양을 하면 총수요가 증가하지만 장기 성장률은 총수요에 의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공급 및 생산 쪽에서 이뤄진다. 총수요는 단기 성장률만 잠깐 올리게 되고 과도하면 버블을 만들고 버블이 터지면 위기를 맞는다.

-그렇다면 공급 측면에서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의 고도 성장에서 발견한 동력이 ‘인적 자본’이다. 지금 한국의 성장률이 내려앉는 것은 인적 자본의 성장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성장률을 올리려면 인적 자본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지만 인적 자본의 축적이 안 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엉뚱한 인적 자본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인적 자본에는 모방형 인적 자본과 창조적 인적 자본이 있다. 1960~1980년대는 모방형 인적 자본에 투자했지만 모방으로는 원조 국가와의 격차를 20년 이내로 좁히지 못한다. 선진 기술이 20년 특허로 보호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가 창조적 인적 자본으로 바꿀 시기를 놓쳤다는 뜻인가.

△1990년대에 이미 바꿨어야 했다. 기술 진보와 시대 변화에 맞춘 인적 자본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이뤄지지 않았다. 중고생들은 50년 이전 방식의 교육을 받고 있다. 모방형 인적 자본에 의한 성장으로는 선진국에 들어가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술 진보로 성장하는 나라는 미국 정도밖에 없다. 미국은 창조형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일본은 미국과 비교된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거쳤지만 아직도 정체돼 있는데.

관련기사



△일본 경제는 1980년대 말 미국을 따라잡는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 버블이 생겨 1990년대 초 꺼졌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10년에 이어 2000년대까지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일본은 좋은 반면교사다. 일본은 장기 성장률이 계속 추락했는데 창조형 자본주의를 만들기보다 경기 부양으로 대응했다. ‘아베노믹스’도 부양 정책이다. 그 결과 장기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한 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다. 하지만 우리는 인재 양성을 가로막는 요인이 많다. 산업 현장 기술 인력은 부족하고 교육이 이념화하는 것도 문제다.

△지금 시스템으로는 창조적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 우선 학교에서 창조형 수업을 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만드는 수업을 해야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능력을 키운다. 대학 입시부터 바꿔야 된다. 서울대 입시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서울대 입시에서 창의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초중고 교육은 순식간에 바뀐다. 삼성이 창의력 기준으로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행정고시도 마찬가지다. 서울대·삼성·행정고시 3개 분야만 창의력 기준으로 선발해도 굉장한 반향이 있을 것이다.

-인적 자본을 키우려면 예산의 효율성이 필요하다. 특허 문제를 얘기하며 ‘아이디어 공적 구매 제도’를 제시했는데.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를 시행한 뒤 국가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매하는 방안이 있다. 연구개발(R&D) 예산 24조 원 중 4%, 1조 원만 투입해도 10만 명한테 각각 1,000만 원씩 줄 수 있다. 아이디어에 원작자 이름을 붙여 명예와 재산권도 보장해준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의 아이디어를 인용도 없이 훔쳐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산 규모보다 지출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 제대로 성장하려면 창조형 인적 자본 촉진에 예산을 써야 한다. 지금은 교육 예산 73조 원 대부분을 모방형 인적 자본 육성에 쓰고 있다.

-주력 산업도 고민이다. 반도체 등의 기술 격차는 좁혀지는데 신(新)산업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성장률이 추락하면서 주력 산업 범위가 축소돼 왔다. 조선·해운·철강이 힘을 잃었고 반도체와 자동차 정도만 남았다. 두 분야도 10년간 버텨줬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주력 산업 문제만 봐도 창조형 자본주의 체제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난다. 이게 갖춰져야 신산업이 등장한다. 정책 지원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주력 산업을 택해 밀어주는 것보다 각 산업에서 아이디어가 나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곳에서 새로운 먹거리가 나올지 모르니 전 산업에 걸쳐 새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사람들이 두텁게 포진해 있어야 한다. 대학 교육부터 창의적 인재를 기르도록 바꿔 모든 산업에 고루 진출하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산업 패권 전쟁도 걱정이다.

△패권 경쟁 핵심은 기술 패권이다. 아이디어의 무한 경쟁 시대가 심화하고 있다. 패권 전쟁에 대비할 방법은 독자적 기술 확보다. 기술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피해만 커진다. 이런 때일수록 창조형 자본주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지도자들이 덜 절박하다.

-장기 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한 핵심 대책은 구조 개혁 아닌가.

△‘5년 1% 하락의 법칙’을 극복하려면 혁명적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 노동 개혁의 경우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때 근로자들에게 창의력을 키워줘야 된다. 재정도 근로자의 생산성을 기르는 데 써야 한다. 창의적 아이디어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가 중요하다. 그런 게 없으니 아이디어를 다 훔쳐가고 아무도 아이디어를 안 낸다.

-급증하는 국가부채도 걱정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30년 국가부채가 2,198조 원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지출은 공짜가 아니다. 지출을 늘리려면 현 세대든 미래 세대든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세금 부담을 늘리면 성장률 하락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물론 지출해도 잘 쓰면 성장률은 올라간다. 창조형 인적 자본에 대한 보조금을 주는 경우다. 그러나 이런 일이 아니라면 정부 지출과 부채의 급속한 증가는 주의해야 한다.

He is

서울에서 태어나 1983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뒤 2006년 이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공교육 경쟁력 강화 및 사교육비 경감 민관협의회’ 위원과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외환 위기에 대한 징비록 성격의 ‘한국의 위기와 극복’을 공동 편저했고, 최근 우리 경제의 성장 방안과 미래 비전을 제시한 책 ‘모방과 창조’를 출간했다.


김영기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