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 가격이 최근 1년새 2배 가량 껑충 뛰면서 내년 전기요금 또한 최소 1.5배 이상 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전기요금 산정 시 국제 연료비 가격 변동분을 반영하는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하면서 1kWh당 분기별 ±3원·연간 ±5원으로 변동폭을 제한했지만, 이는 ‘기준연료비가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전제하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재 분기별 전기요금은 직전 1년의 평균연료비인 ‘기준연료비’에 직전 3개월의 평균연료비인 ‘실적연료비’를 가감하는 형태로 산출된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연료비 가격 추세에서는 기준연료비의 급등이 불가피 하다.
다만 정부는 내년 대통령선거 등의 빅이벤트를 의식해 “기준연료비 변동 여부는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공식화 할 당시 기준연료비는 ‘차기 전력량 요금 조정 필요시 갱신’이라는 조항을 넣어, 기준연료비를 매년 변경하지 않아도 되게끔 조치했다. 기준 기준연료비의 정의를 ‘직전 1년 평균 연료비’로 규정해 놓은 반면, 요금 변경 여부는 ‘조정 필요시’라는 정부 입맛대로 적용가능한 ‘모순된 문구’를 넣어놓은 셈이다. 정부가 다음달 내년 1분기 전기요금 산정 시, 기준연료비를 동결할 경우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 1년만에 사실상 폐기처분 됐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최근 1년새 연료비연동제를 구성하는 LNG·석탄·석유 가격이 최대 3배 가까이 상승했다. 한전의 전기 요금 관련 산식에 적용되는 환산 계수를 100으로 놓았을 때 석탄 가격에는 69.5, LNG에는 29.6, 석유(벙커시유)에는 0.7을 각각 곱해 연료비 조정 단가가 결정된다.
국내 전기요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LNG 수입가격(1톤당 기준)은 지난해 10월 275.8달러에서 올 10월 668.0달러로 2.5배 가량 높아졌다. 전력용연료탄수입가격 또한 지난해 11월 1톤당 62.8달러에서 이달 154.4달러로,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1월 배럴당 44.0달러에서 이달 80.9달러로 각각 2배 가량 상승했다.
관세청 고시 기준 연료비 또한 최근 1년새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올 1분기 연료비의 기준이 됐던 지난해 9~11월의 1kg당 LNG 평균 수입가(세후 기준)는 350.2원이었지만, 올 4분기 전기요금의 기준이 됐던 올 6~8월 LNG 가격은 601.5원에 달했다. 현재 유럽연합(EU) 중심의 LNG 수요 폭증을 감안하면 올 9~11월의 LNG 가격은 직전 분기 대비 한층 가파른 상승이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국내 전기요금은 최근까지 제자리 걸음을 했다. 정부는 올 1분기 국내 전기요금을 전년 대비 1kWh당 3원 인하 했으며, 올 4분기에야 이를 다시 3원 인상하며 원상 복구 시켰다. 이 같은 전기요금 동결로 한국전력은 올 3분기에만 9,36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올 한해 누적 영업손실액은 5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면 국민들은 원가 보다 낮은 전기요금 덕에 가계부담을 줄였다.
문제는 내년이다. 지난달 1kWh당 평균 전력 정산단가는 90.24원으로 전년 동월의 57.31원 대비 57.5% 증가했다. 현재 연료비 상승 추세를 보면 지난해 12월과 올 11월까지의 평균 연료비를 기준으로 산정돼야 하는 내년 기준연료비는 1.5배 가량 높아져야 한다. 현재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요금이 5만 5,000원 가량이라는 점에서 내년 1분기에는 관련 요금이 8만원으로 껑충 뛸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정부는 기준연료비 인상에 대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요금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이사회 의결 후 이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하며, 산업부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요금 변경 여부를 결정한다.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기재부가 ‘물가상승 우려’를 이유로 요금 인상을 허락하지 않을 경우 한전이 부담을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국의 1kWh당 전기요금은 2019년 기준 10.2센트로 일본(25.4센트), 독일(33.4센트), 영국(23.4센트)은 물론 석유 순수출국인 미국(13.0센트)보다도 낮다.
이 같이 요금 동결이 계속될 경우 향후 혈세 투입이 불가피 하다. 한전의 최대주주를 살펴보면 산업은행(32.9%)과 기획재정부(18.2%) 등 정부 지분이 과반을 차지한다. 한전은 2조7,98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지난 2008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정부로부터 6,680억원을 지원 받은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 과속’ 정책에 따라 한전의 전력단가도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9차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오는 2030년 신재생이 전체 발전량에 차지하는 비중은 20.8% 수준이지만, 탄소중립위원회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을 통해 신재생 발전 비중을 30.2%로 늘려 잡았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신재생에너지공급 의무화(RPS) 비율을 올해 9%에서 2026년부터는 25.0%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500MW 이상 발전 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는 신재생공급인증서(REC) 구매 등을 통해 RPS 비율을 충족해야하며, 매년 수 조원을 REC 구매에 지출하는 만큼 향후 재무부담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한전은 정부의 ‘신재생 과속’ 정책에 따른 설비비용까지 떠안아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을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 향후 2년간 투입해야 하는 예산이 1조 1,202억 원이며 정부의 NDC 상향으로 관련 비용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ESS 구축에만 수백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전은 향후 5년간 송배전망 구축에 33조9,171억원을 투입할 방침이지만 신재생 비중 확대로 관련 예산 투입 규모도 추가로 늘려야 한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전기요금 상승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수립된 신규 원전 설립 계획 가운데 이미 건설 중이었던 신한울 1·2호기를 제외한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와 같은 발전소 건설은 사실상 백지화했다. 반면 최근 값비싼 LNG 발전이 늘어나며 연료비의 기준이 되는 계통한계가격(SMP)은 6개월 연속 상승 추세다. 현 정부는 원전의 발전량을 대체하기 위해 신재생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발전 변동 폭이 큰 신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LNG발전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기준 LNG의 1㎾h당 정산 단가는 126.1원으로 35.1원인 원자력의 4배 가량이다.
한전의 외부 출연금도 1년 새 6배가량 급증해 지난해만 하더라도 한전공대 설립을 위한 출연금(384억 원)을 포함해 총 455억 원을 외부 출자했다. 한전은 중장기재무계획을 통해 올 한해에만 4조3,845억원의 영업손실을 예상했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로는 손실규모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