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한국 시간)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17번 홀(파5). 핀까지 182야드 남은 상황에서 고진영은 6번 아이언을 꺼내들었고 볼은 벙커를 넘어 그린에 올라갔다. 2퍼트로 가볍게 버디를 추가한 고진영은 추격하던 하타오카 나사(일본)와의 간격을 2타 차로 유지했고 결국 1타 차로 우승했다. 17번 홀의 아이언 샷이 승부에 사실상 쐐기를 박았던 것이다.
고진영의 장기는 정교한 ‘컴퓨터 아이언 샷’이다. 이번 대회 2라운드부터 최종일까지 3일 연속 그린 적중률 100%를 기록했다. 최종일 때는 티샷의 페어웨이 안착률까지 100%를 찍었다.
고진영의 올해 샷 감은 올림픽 전과 후로 나뉜다. 지난 8월 도쿄 올림픽 전까지는 우승 1회에 상위권 성적을 자주 내기는 했지만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지배력’은 보이지 않았다. 금메달을 기대하며 출전한 올림픽에서는 공동 9위에 그쳤다. 이후 한 달가량 국내에 머물며 훈련에 매진한 고진영은 예전 스윙 코치였던 이시우(40)와 재결합했다. 그런 뒤 180도 달라졌다. 9월부터 출전한 7개 대회에서 우승 4회, 준우승 1회, 공동 6위 2회 등 경쟁자들이 넘볼 수 없는 성적을 냈다.
그 한 달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이 코치는 “이전에는 스윙의 모양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올림픽 후에는 큰 근육을 활용해 파워와 정확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나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등 최근 대부분의 장타 선수들은 코킹을 많이 하는 것보다 큰 근육을 쓰면서 아크를 크게 하는 공간 활용으로 장타를 날린다는 게 이 코치의 설명이다. 이 코치는 “(고)진영이는 이전에는 몸통 회전량은 떨어지고 손목 움직임이 많았는데 한 달간 이를 교정했다”며 “정확도도 향상되고 거리는 반 클럽에서 한 클럽이 늘었다”고 말했다. 차세대 기대주 김주형(19) 등 남자 선수들과 동반 라운드를 한 것도 도움이 됐다.
고진영의 스윙 중 또 다른 특징은 넓은 스탠스다. 국내에서 뛸 때는 비거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LPGA 투어에 진출하면서 비거리를 늘려야 했고 스윙 아크를 키우다 보니 안정적인 토대를 위해 넓게 서게 됐다. 다운스윙 때 밸런스가 좋은 덕에 지면 반력을 이용하는 동작도 뛰어나다.
이 코치는 아마추어 골퍼들도 고진영처럼 활발한 체중 이동 동작을 따라하면 비거리나 방향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그는 “몸이 좌우로 출렁이면 안 된다. 체중 이동은 발 안쪽에서만 움직이는 것”이라며 “백스윙 때는 오른발 안쪽, 피니시에서는 왼발 안쪽에 체중이 있는 느낌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