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화관법, 화평법, 산안법과 같은 지나친 규제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본, 대만 등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우리나라 기업은 각종 규제에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구원은 23일 ‘오늘의 세계 경제 -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리스크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반도체 공장은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수도권에 입지해 있으므로 높은 지가, 수도권 규제, 환경규제 등으로 추가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도권에 있는 기업연구소는 연구실험을 충청권으로 내려가서 테스트하고 다시 수도권으로 와서 연구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비효율적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원 측은 대(對) 중국 리스크를 감안해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반도체 산업은 중국과의 연계성이 매우 높아 미국의 대중정책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생산공정의 대중국 의존도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며 “핵심기술의 보안 및 보호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공급망에 있어서 취약 분야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여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입 금액 자체는 높지 않으나 특정 국가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우 공급망 안정화에 각별한 주의를 가져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자립화할 수 있도록 R&D에 대한 투자 및 인력 확보에 힘써야 한다”며 “산업분야별 공급망 리스크 관리와 함께 공급망 다변화, 지리적 리밸런싱(rebalancing)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지난해 기준 수입량의 93.8%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으며 본딩와이어(중국, 91.0%), 포토레지스트리(일본, 86.5%), 연마제(일본, 85.5%), 다이본드 페이스트(일본, 81.6%), 블랭크마스크(일본, 77.5%) 등도 특정국가 수입 의존도가 높았다. 보고서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는 세계 최고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갖춘 독과점적 공급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당분간 일본의 메모리 관련 소부장 산업에 의존해야 하는 기술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며 “중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 소재도 상당한데, 그 이유는 중국에는 우리나라의 화관법 등 환경 관련 화학물질 관리가 상대적으로 느슨해 일본, 미국, 독일 기업 등이 현지에 많이 진출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공급망 재편 방향과 관련해서는 “중국 내 생산비용 증가요인 외에도 미국의 대중제재로 치러야 할 경제외적 비용이 더 커질 수 있으므로, 보다 안정적 생산이 가능한 곳으로 생산 중심이 옮겨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중국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생산시설과 공급망 구조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응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로 돼 있어 중국 내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스마트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