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왜 모두 ‘불행 공화국’에 사는가

정상범 논설위원

저성장 고착화에 분배 갈등 격화

MZ 코인 열풍은 자산 박탈감 반영

정치 프레임에 '집 부자' 죄인 취급

파이 키워 'Maker' 우대사회로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밋 롬니는 한 모임에서 “47%의 미국인들이 소득세를 내지 않고 보건 의료, 주택, 음식을 정부에 의존하느라 삶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고 발언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롬니는 결국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폴 라이언도 TV에 출연해 “미국인의 60%가량은 자신이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연방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미국은 과반수의 ‘가져가는 자(takers)’와 나머지 ‘만드는 자(makers)’로 나뉜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라이언은 논란이 커지자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정치인들의 이분법적 논리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조세 형평성이나 국가의 역할, 공동체 윤리 등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 사회도 최근 자산 및 소득 격차, 분배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대선 국면을 맞아 소수 상위 계층의 주머니를 털어 국민에게 나눠주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여당에서 꺼냈다가 철회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소동이 단적인 사례다. 청년 세대의 암호화폐 투자 열풍도 마찬가지다. 어느 조사에서 청년들에게 암호화폐에 투자한 이유를 물었더니 절반(49.3%)이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 증식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주변에 이익을 본 사람들이 많아서’라는 비율도 15.0%에 달했다. 이는 취업난과 집값 폭등에 대한 MZ세대의 허탈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산 증식을 위해 가장 필요한 미래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을 꼽은 응답자가 36.1%에 달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방만한 돈 풀기에 따른 최대 피해자가 사회에 갓 진입한 청년들과 무주택자·서민층이라는 얘기다. ‘함께 잘 사는 나라’를 주창했던 현 정부에서 오히려 경제적 약자들의 삶이 더 팍팍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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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유주택자라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종합부동산세 폭탄을 때려놓고 ‘정밀 타격’ ‘부자 증세’ 운운하며 갈라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인은 그렇다 쳐도 관료들까지 나서 분칠한 통계 숫자로 2% 운운하며 다수 국민과 무관하다고 떠들고 있으니 국민의 심부름꾼인 공복(公僕)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더 큰 문제는 종부세 대상자를 아예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고 죄인으로 내모는 현실이다.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많이 내서 나라 곳간을 채워줬는데도 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른바 ‘집 부자’라는 정치적 프레임이다. 현 정권은 집권 내내 이런 식으로 국민을 편 가르고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우리 경제는 전체 파이가 쪼그라들고 성장 엔진도 멈춰설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서민들은 극심한 박탈감에 시달리고 중산층도 세금 폭탄이라는 고통을 떠안고 있다. 우리 모두 ‘불행 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를 놓고 세대·계층 간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 이후 0%대로 떨어져 38개 회원국 중 꼴찌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큰 미국(1.0%)이나 일본(1.1%)은 뛰는데 한국만 주저앉는다는 경고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경제 체질 개선을 서두르고 과감한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을 통해 민간 부문의 활력을 북돋워야 한다. 그래서 파이를 키우고 질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혁신으로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우대받는 사회 분위기도 시급하다.

미국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부유세 도입을 주장해온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을 겨냥해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가져가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갖가지 명목의 과세를 추진하는 미국의 정치인들을 겨냥해 “세금이 바닥나면 이렇게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고 직격했다. 미래 비전 제시를 외면하고 선심성 돈 퍼주기 경쟁에 골몰하는 우리 대선 주자들이 곱씹어볼 대목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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