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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리딩, 작곡가의 상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

■코리안심포니 작곡가 아틀리에 '오케스트라 리딩'

5개 창작곡 풀편성으로 첫 연주

단원들과 의견 교환, 악보 다듬어

"곡 완성도 높아져" 참가자들 만족

최종 선정곡 내년 공연무대 올라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작곡가 아틀리에’ 오케스트라 리딩 첫날인 지난 22일 이승원 지휘자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신진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하며 합을 맞추고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작곡가 아틀리에’ 오케스트라 리딩 첫날인 지난 22일 이승원 지휘자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신진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하며 합을 맞추고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




“트럼펫 선생님들, 세 번째 박자 조금만 빨리 나와주세요.” “이 부분은 작곡가가 가급적 레가토(음과 음을 끊지 않고 연주)로 해달랍니다.” “여기서 악센트는 좀 더 입체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국립예술단체 공연 연습장의 오케스트라 스튜디오. 지휘자 이승원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각 파트를 향해 주문들을 쏟아낸다. 단원들은 연주 틈틈이 악보에 연필로 지적된 내용을 표시한다. 지휘자는 20~30여 초에 한번 꼴로 연주를 끊고 그때그때 필요한 박자와 소리, 악기 간 조화를 다듬는다. 음표 하나하나, 곡 마디마디 ‘디테일’을 완성해 나가는 이 시간은 작곡가가 상상한 음악이 실제 연주로 생명력을 부여받는 첫 순간, 바로 ‘오케스트라 리딩’의 시간이다.

이날의 ‘오케스트라 리딩’은 단순히 악보를 처음 연주하는 것을 넘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의견이 더해져 창작곡이 관객 앞에 오를 수 있도록 수정·보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코리안심포니의 작곡가 육성 기획 ‘작곡가 아틀리에’에 참여하는 1기 작곡가 임영진·전민재·전예은·위정윤·정현식은 22~23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이번 리딩을 통해 지난 8개월 간 고뇌하며 써 내려간 각자의 창작곡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처음 마주했다. 신진 작곡가로서는 좀처럼 누리기 어려운 벅찬 경험의 현장에 다녀왔다.

지난 22일 진행된 코리안심포니의 오케스트라 리딩에서 이승원 지휘자와 참여 작곡가가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지난 22일 진행된 코리안심포니의 오케스트라 리딩에서 이승원 지휘자와 참여 작곡가가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



첫날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5개의 작품 리딩이 진행됐다. 지휘자나 작곡가의 일방적인 주문이 아닌, 실연자인 단원들의 적극적인 의견이 더해져 곡이나 주법, 악기가 수정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위정윤의 ‘번짐, 수채화’의 경우 작곡가가 글로켄슈필(실로폰 모양의 악기)을 넣어 ‘긁는 주법’을 요구했지만, 코심의 악기는 이 같은 주법이 불가능해 우선 소리가 비슷한 ‘크로탈’로 대체해 연주했다. 일정이 끝나갈 무렵 피드백 시간에 ‘악기 교체가 필요하냐’는 타악기 연주자의 질문에 작곡가는 “색채가 괜찮아 크로탈을 사용해도 될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피드백에는 지휘자와 작곡가 외에 오케스트라 악장과 각 파트 연주자가 함께 하며 악보의 구현 가능성, 효율적인 주법 등에 대한 가감 없는 의견을 전달한다. 신진 작곡가들에게는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던 현장 경험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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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작곡가 아틀리에’ 오케스트라 리딩 첫날인 지난 22일 이승원 지휘자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신진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하며 합을 맞추는 가운데 작곡가와 멘토들(앞줄)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작곡가 아틀리에’ 오케스트라 리딩 첫날인 지난 22일 이승원 지휘자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신진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하며 합을 맞추는 가운데 작곡가와 멘토들(앞줄)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


둘째 날인 23일의 분위기는 전날과 사뭇 달랐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연주를 이어가며 틈틈이 수정이 이뤄졌고, 오후 4시께 5개 작품마다 녹음을 포함해 두 번의 연주가 모두 끝났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승원 지휘자가 이틀 일정의 ‘끝’을 알리자 60여 명의 단원과 작곡가, 오케스트라 관계자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로 화답했다.

코리안심포니의 ‘오케스트라 리딩’에 참여한 이승원 지휘자의 악보에는 리딩 전 작품 연구와 이틀간의 연주, 관계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 사항 등 고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코리안심포니의 ‘오케스트라 리딩’에 참여한 이승원 지휘자의 악보에는 리딩 전 작품 연구와 이틀간의 연주, 관계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 사항 등 고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


정규 공연을 준비하는 통상의 연습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부담이 더 큰 작업이었다. 신진 작곡가들은 자신의 구상을 실제 소리로 빚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명하며 어필해야 했고, 연주자들은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실제 구현이 어려운 부분을 조율하며 악보와 현실의 간극을 좁혀나가야 했다. 이 ‘공동 과제’를 이끄는 지휘자의 어깨는 배로 무겁다. 이승원 지휘자는 “풀 편성 오케스트라의 현대곡 5편을 연달아 리딩한 건 처음”이라며 “리딩 전 닷새 간은 악보를 보느라 밤을 새웠고, 첫날 피드백이 끝나고 수정 사항을 반영하느라 새벽 네 시까지 잠을 못 잤다”고 그간의 부담을 털어놓았다. 그는 “작곡가의 음악적 아이디어와 영감이 지휘자를 통해 연주자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내가 각 곡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며 “나보다 더 밤잠 설쳤을 작곡가들을 생각하며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코리안심포니의 오케스트라 리딩에 참여한 작곡가가 연주 후 피드백을 메모를 하고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코리안심포니의 오케스트라 리딩에 참여한 작곡가가 연주 후 피드백을 메모를 하고 있다./사진=코리안심포니


참여 작곡가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시간이었다. 정현식 작곡가는 “내 곡이 상상했던 것과 같이 나올지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며 “리딩을 통해 스스로 확산하지 못했던 부분, 미처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 채워지면서 처음 구상했던 것보다 곡이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위정윤 작곡가도 “그동안 관현악 작품을 세 번 정도 써봤는데 여전히 어렵다”며 “관현악곡은 ‘풀 편성으로 열 곡 정도는 써봐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던 교수님 말씀을 실감하는 현장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리딩과 심사를 통해 최우수 작품으로 꼽힌 창작곡은 2022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정기·기획 공연에 올라 관객들과 만난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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