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해 국제 결제망 차단, 러시아 루블화의 환전 금지 등이 담긴 ‘패키지 제재안’을 꺼내 들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이하 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화상 회담 자리에서 이 같은 제재 방안을 직접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러시아가 당장 다음 달 침공을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한 병력을 물리도록 압박하려 ‘초강수’를 두는 것이다. 미국의 압박에도 러시아 역시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는 만큼 외신들은 양국 정상 간 회담에서 타협의 여지가 크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이 제시한 패키지 제재안에는 러시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 접근 차단이라는 초강력 수단이 담겼다. SWIFT 차단은 국제 금융거래에서 해당국을 사실상 ‘퇴출’하는 조치다. 과거 이란과 북한이 핵 문제와 관련해 이 같은 제재를 당했고 유럽 의회는 지난 4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SWIFT에서 러시아를 차단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러시아 루블화를 달러, 또는 다른 외국 통화로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와 러시아 국채 거래를 막는 방안 등도 제재안에 포함됐다. 이 밖에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과 국영 에너지 기업을 겨냥한 것도 목록에 올랐다.
미국은 2014년 러시아가 군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도 관련 주요 인사에 대한 여행 금지와 자산동결 등의 제재를 가했다. 당시 러시아 ‘압박 효과’는 미미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이번에 미국이 제재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화상 회담 직전인 6일 영국과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정상과 잇따라 통화하며 이 같은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과 공조를 공고히 했다’는 점을 푸틴 대통령에게 내보인 셈이다.
실제 시행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미국 정부는 SWIFT 차단이 푸틴 정부뿐 아니라 러시아 민간 분야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에너지 기업에 대한 제재 역시 자칫 유럽 가스난 심화라는 역효과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절반가량을 수입하는 유럽은 올겨울을 앞두고 러시아가 수출 물량을 갑자기 줄인 탓에 극심한 가스난을 겪기도 했다.
미국이 준비한 각종 제재가 러시아 ‘압박용 카드’로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푸틴 대통령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고 맞서는 상황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 탓”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고 이날 회담에서도 이를 견지했을 확률이 높다. 블룸버그는 “푸틴이 바이든과의 회담에 나선 목적은 우크라이나 긴장 완화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국 간 대화의 여지가 아예 없지는 않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병합 직후 맺은 민스크 평화협정으로 ‘출구’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미 고위 당국자도 “우크라이나에 군을 직접 파병하는 것은 우리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