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리커창의 우세, 최종 게임은 두고 봐야.” 지난 6일 발표된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 결정을 본 현지 외교 관계자의 목소리다. 중국의 내년 경제 정책을 조율할 8일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이틀 앞둔 이날의 정치국 회의 결정을 알린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회의는 “내년 경제 업무에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가장 우선하며 적극적 재정정책과 온건한 통화정책을 계속 실시한다. … 부동산 산업의 건강한 발전 및 양성(良性) 순환을 촉진한다. … 기업의 혁신 주체로서의 지위를 강화하고 과학기술, 산업, 금융의 양성 순환을 실현한다”고 밝혔다.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앞두고 중국 정부의 경제에 대한 시각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작년 이맘때 정치국 회의에서 ‘규제’, ‘제한’, ‘억제’ 등으로 뒤섞인 결정이 나온 것과 비교됐다. 즉 공산당 이념과 홍색 규제를 강조해온 시진핑의 주장이 후퇴하고 경제 우선을 내세운 리커창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만큼 중국의 경기둔화가 심각하다는 의미도 된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서 가장 애매모호한 관계가 권력 서열 1위인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서열 2위인 국무원 총리 사이다. 현재 총서기는 시진핑이고 총리는 리커창이다. 중국에서 총서기(국가주석 겸임)와 총리와의 관계는 대통령제 아래서 총리를 두고 있는 우리나라나 프랑스, 러시아 등과는 크게 다르다.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믿을 만한’ 사람을 총리로 임명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중국에서 ‘국가주석(영어로는 president)’은 명목상 직위다. 실권은 별로 없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대통령이 국가수반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이에 맞는 직책을 만든 것뿐이다. 중국 역사상 국가주석이 없었던 시대도 적지 않았다. 공산당 독재 체제인 중국에서 최고 권력자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다. 현재는 총서기가 당연직으로 국가주석을 겸임한다.
이런 총서기-총리 시스템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의 작품이다. 마오쩌둥의 개인독재와 이로 인한 중국인들의 저항이 공산당 장기 지배의 최대 위협이라고 생각한 덩샤오핑은 ‘집단영도(중국어로는 集體領導)체제’를 꾸리기로 하고 이 ‘집단’을 각기 다른 파벌로 구성했다. 중국 파벌은 대개 태자당, 상하이방, 베이징방, 간쑤방,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 등으로 불리는데 이들이 권력을 균점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 권력자는 전임자가 후임자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한국 등 민주주의 국가와는 다른 방식이다.
1992년 총서기(국가주석 겸임)가 됐던 장쩌민과 총리(1기)였던 리펑은 파벌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묘하게 정권이 유지됐다. 이는 덩샤오핑이라는 원로 그룹의 압력과 함께 과두제를 유지해야 겠다는 공산당 수뇌부의 목표 때문이었다. 2002년 총서기였던 후진타오와 총리였던 원자바오도 마찬가지였다. 공청단파였던 후진타오와는 달리 원자바오는 대표적인 기술관료 출신으로 간쑤방이다.
이런 추세는 시진핑 시대에도 이어졌다. 시진핑은 장쩌민파의 후원을 받은, 넓은 의미의 태자당·상하이방 계열이었고 리커창은 후진타오의 공청단파 직계였다. 전직 총서기였던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처럼 이들 후계자인 시진핑과 리커창의 관계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장쩌민 시기와 후진타오 시기에는 총리 권한이 다소 강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경제전문가가 아니고 또한 권력 분점에 따른 집단영도라는 덩샤오핑의 지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장쩌민 시기의 주룽지 총리(2기)와 후진타오 시기의 원자바오 총리는 나름대로의 독자적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후진타오 시대는 별도로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원자바오의 입김이 셌다.
총리의 권한 문제는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서 크게 불거진다. 집단영도를 약화시키고 1인 권력을 강화하고 있는 시진핑이 자신의 권력을 총리에게 나눠줄 리는 없었다.
여기서 중국의 권력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중국의 권력체계는 크게 공산당과 국무원으로 나뉜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부’는 중국에서는 국무원이다. 국무원 아래에 경제파트, 외교파트, 사회파트 등이 있다. 국무원의 수장이 바로 총리다.
공산당은 국무원을 위에서 조종한다. 중국은 당-국가 체제라서 정부 보다 당이 우위에 있다. 때문에 공산당 총서기가 국무원 총리보다 높은 위치다. 예를 들면 국무원 외교부장(장관)은 왕이인데 그는 공산당 외교담당인 양제츠의 지휘를 받는 형식이다. 실제 외교 과정에서는 다소 애매하다. 대부분 국가와의 외교 무대는 왕이가 담당한다. 미국의 경우만 양제츠가 직접 한다. 만약 그외의 외교 무대에 양제츠가 직접 나설 필요가 있을 때는 카운트파트가 외교장관은 아니다. 최근 톈진에서 양제츠가 만난 사람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아닌,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다.
공산당이 정부(국무원)를 지휘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때로는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는 국무원은 정부 사무를 하고 공산당은 당 사무(이념)를 한다. 하지만 계급이 있기 때문에 공산당의 발언권이 크다. 국무원은 공산당 결정의 집행 기구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물론 국무원이나 공산당이나 구성원 자체는 모두 공산당원이다. 하지만 같은 담당이면 공산당내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권력이 세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외교에서 양제츠는 정치국원(정원은 25명)으로, 중앙위원(204명)인 왕이 보다 서열이 한참 높다.
결과적으로 총리의 역할이 애매해지는 이유다. 관례상으로는 국무원 총리는 국내의 경제와 사회 등을 맡는다. 공산당 총서기는 당 사무와 함께 외교(국가주석으로서)와 국방(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을 맡는다. 물론 이는 원칙이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은 양자 간의 역학관계에 따른다. 총서기가 총리가 역할을 존중하면 총리의 역할은 커진다. 반면에 총서기가 총리의 행동에 간섭하게 되면 총리의 역할을 하염없이 축소된다. 현재의 상황은 후자에 가깝다. 경제든지 사회 문제든 시진핑의 입김이 커지면서 리커창 총리의 입지는 계속 줄어왔다. 이는 시작부터 그랬다.
앞서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의 관성에 따라 2012년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 리커창도 의욕을 보였다. 시장 존중의 개혁이 진행되면서 ‘리커노믹스(Likonomics)’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사라진다.
시진핑이 ‘신창타이(新常態·New normal)’라는 구호로 당·정부 주도의 개혁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국무원이 아니라 공산당으로 넘어가면서 리커창의 역할도 축소됐다. 이런 추세는 지금까지 계속됐고 ‘집단영도’ 체제를 허물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시진핑의 1인 권력이 강화됐다.
그동안 리커창의 반발도 없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경제는 총리의 권한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덩샤오핑이 가름마를 탄 규칙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서 나온 리커창의 “중국 인구 6억명의 월 수입이 1.000 위안(약 18만원) 이하에 불과하다”는 발언이다. 중국 경제상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탈빈곤에 성공하고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를 건설했다는 시진핑의 자신감에 흠집을 내는 사건이었다. 이후 시진핑 측근들이 불만을 가졌다는 소식이 나왔다.
밖으로 가시화된 충돌은 ‘노점상’ 논란이었다. 지난해 말 코로나19로 악화된 상황에서 리커창은 노점상이 경제활력을 줄 수 있다면서 이의 활성화에 나섰다. 이것도 중국 경제가 좋지 않다는 하나의 신호였다. 이른바 ‘노점경제’가 유행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수도 베이징에서 ‘불법’을 이유로 대대적인 노점상 단속에 나섰다는 발표가 있었다. 베이징시 공산당 서기 차이치는 시진핑파의 일원이다. 이후로 노점경제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총서기와 총리의 이런 애매모호한 관계에 이어 가끔씩 충돌하는데도 그럭저럭 양자가 병립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총서기와 총리가 각자 파벌을 대표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리커창 총리는 전 총서기였던 후진타오가 이끈 공청단파 직계다. 시진핑이 리커창을 축출하려는 것은 전체 공청단파를 적으로 삼고, 특히 자신에게 총서기 자리를 넘겨준 후진타오까지 배신하는 것이다. 시진핑은 일단 참을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의 경기둔화는 리커창의 활동범위를 늘렸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이유로 중국 내 경제와 사화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시장의 활력을 빼앗고 사회를 경직되게 했다. 규제가 늘어날 수록 시장주체의 활동은 위축된다.
최근 크게 불거진 석탄대란이 상징적이다. ‘2060년 탄소중립’이라는 시진핑의 대외적 선언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석탄 감축이 이뤄졌고 이어 지난 9월부터 전국적인 전력난으로 폭발했다. 중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불만도 커졌다. 결국 리커창이 ‘운동식’은 안 된다면서 석탄 증산을 독려했고 서너달만에 전력난은 거의 해소됐다. 시진핑은 체면을 구겼다.
최근 잇따른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와 정치국 회의 그리고 8일부터 시작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 정부가 ‘안정’을 목표로 경기부양에 나서는 것도 경기활력을 되살려야 한다는 리커창 방식의 시각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올들어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한 부동산 대출 억제,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규제, 사교육 금지, 저탄소 전환 등 시진핑식 구조 개혁이 경기둔화로 이어졌다는 불만이 확산됐다. 즉 먼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데는 시진핑도 반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결과는 이미 나왔다는 것이 현지의 전망이다. 시진핑은 내년 가을 예정인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3연임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5년 임기를 세 번째 15년 동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2연임, 10년씩 하고 물러난 관례를 파괴하는 것이다. 반면 리커창은 2연임, 10년 임기를 끝으로 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하다. 결국은 시진핑이 ‘오너’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시진핑의 장기집권으로 총서기와 총리 관계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총서기와 총리는 다른 파벌에서 나와 함께 집단영도를 해야 한다는 30년도 더 된 관례가 흔들리고 있다. 차기 총리가 시진핑파에서 나올 경우 시진핑의 1인 권력은 더욱 강화된다. 그리고 총리가 총서기에게 대드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파의 선두주자는 천민얼 충칭시 서기로 알려져 있다.
비(非)시진핑파에서 총리가 나올 경우 그나마 집단영도는 유지될 수 있다. 비시진핑파의 차기 1순위는 후춘화 부총리다. 후 부총리는 리커창 총리와 같은 공청단파다.
제3차 역사결의에서 분명해졌듯이 중국은 최근 ‘집단영도’라는 표현의 사용빈도를 크게 줄이고 ‘집중통일영도(集中統一領導)’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파벌로 뭉쳐진 집단영도 시스템이 무너질 가능성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