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고신용자 저금리’ 원리 부정해 어떤 국가를 만들 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7일 서울대 강연에서 ‘기본 금융’ 공약을 설명하며 “가난한 사람이 이자를 많이 내고 부자는 저리(低利)로 빌릴 수 있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는 과학이 아닌 정치”라고 규정한 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부담해야 하는데 이게 작동하지 않는 부분이 금융”이라고 했다. 올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이 적용되는 구조적 모순이 있다”고 말했던 것을 연상시키는 궤변이다. 당시 청와대에서 뒤늦게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의 근본 질서를 부정한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위해 금융 취약 계층을 세심하게 보듬는 포용적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의 대원칙을 흔드는 포퓰리즘을 남발하면 저신용자의 도덕적 해이 등 더 큰 부작용을 몰고 온다. 앞서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1호 업무로 대부업의 법정 최고 이자율을 10%로 낮추겠다”고 말해 불법 사채 등 금융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선 후보가 금융 원리를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한 교언영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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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 당시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투입해 금융회사를 살렸음에도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독버섯처럼 기생하는 ‘관치·정치 금융’ 때문이었다. 청와대와 정치권·관료들은 앞에서는 ‘글로벌 금융 허브’를 외치고 뒤에서는 낙하산 놀이터로 삼는 이율배반을 계속해왔다. 금융회사 또한 부정한 개입이 이뤄져도 적당히 타협하며 예대금리차로 이익을 향유하는 천수답 경영을 이어왔다. 이런 일그러진 행태를 바로잡기는커녕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본주의 원리마저 부정하는 발언을 한다면 우리 금융 산업과 국가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금융이 나눠 먹기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부실은 결국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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