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도 어쩔 수 없어요. 어디 갈 곳도 없고 집 안에만 있으니 이런 날에라도 환기를 시켜야죠.”
아침 최저기온이 -3도를 기록한 13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은 대문을 활짝 연 채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쪽방촌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주민 김 모(83) 씨는 “좁은 공간에 모여 살고 있으니 바이러스 전파가 걱정돼 날이 조금이라도 풀릴 때면 문을 열어 놓을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서울경제가 만난 돈의동 쪽방촌 사람들은 코로나19, 겨울 한파, 경제적 어려움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 씨는 “1년에 한 번 난방비가 5만 원 지원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쪽방에 거주하며 셋방을 운영하는 집주인 A 씨는 “가스비 등 공과금을 모두 집주인이 내고 있는데 외풍이 심해 난방비가 많이 나오는 편”이라며 “보일러를 온종일 틀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밤에 잠깐 추울 때만 보일러를 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A 씨는 “쪽방촌 사람들 대부분 밤에만 보일러를 틀고 생활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운영 중인 돈의동 쪽방 상담소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폐쇄된 상태다. 상담소 관계자는 “쪽방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상담소를 폐쇄하고 3차 백신 추가 접종만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상담소 직원은 쪽방촌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며 백신 접종을 권유하는 사이렌을 울렸다. 상담소는 여름에는 운영 시간 이후에도 주민들이 모여 쉴 수 있는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지만 겨울에는 별도의 쉼터를 운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쪽방촌 사람들은 추운 겨울 내내 오갈 곳이 없어 집 안에만 머물러 있다. 일용직에 종사하던 주민 최 모(46) 씨는 “안 그래도 코로나19 이후 일감이 줄었는데 겨울이 되니 일이 더 없다”며 “상담소에서 나오는 라면과 기부로 들어오는 쌀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주민 안 모(62) 씨는 “이곳 사람들은 몸이 불편하거나 사업에 크게 실패해 빚이 많고 알코올중독인 경우가 대다수”라며 “근처 탑골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는데 이마저도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집에서도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없다. 쪽방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재택치료 판정을 받았지만 자가격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B 씨는 “옆집의 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한 명은 병원에 입원했고 다른 한 명은 재택치료 판정을 받았지만 집 밖으로 종종 나와 돌아다닌다”며 “보건소나 상담소에 연락해도 도통 들어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날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한 주민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나와 이웃 주민들과 말다툼을 벌였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5,000명 이상을 기록하는 가운데 한겨울을 앞두고 주거 취약 계층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동현 홈리스 활동가는 “보건 당국과 지자체의 부실한 대책이 오히려 주민들 간에 갈등을 키우고 있다”며 “재택치료를 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이들에게 자가격리를 강요해 고시원·쪽방촌 등에서 소집단 감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임시 생활 시설을 빠르게 마련해 겨울철 한파와 코로나19 감염 전파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