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고분인 줄 알고 정비 목적으로 발굴조사를 시작했는데 파고 들어갈수록 ‘고분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제의시설(祭儀施設)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경북 고령군에서 1,500년 전 대가야의 국가 제의 시설이 최초로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고령군이 추진하고 있는 ‘고령 연조리 고분군 제1·2호분 발굴조사’에서 대가야의 제의시설이 발견됐다고 15일 밝혔다. 발굴조사를 맡은 대동문화재연구원의 배성혁 책임조사원은 “가야 문화권 전역에서 독자적 제의시설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문헌 기록이 남지 않은 대가야의 국가적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발굴 현장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 일대로, 사적으로 지정된 고려 주산성 구역에 위치했다. 고령의 서쪽 주산에 쌓은 주산성은 대가야의 궁성을 포함한 왕도(수도)를 에워싼 산성이며, 이 구역 내 ‘고령 연조리 고분군’은 5~6세기에 조성된 봉토분 65기와 300여 기의 석곽묘가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남쪽으로 인접한 대가야의 중심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하위 고분군이다.
연조리 고분군 제1·2호분의 발굴조사는 지난 7월19일부터 시작됐다. 그 결과 제1호분인 줄로만 알았던 고분이 무덤이 아닌 대가야의 제의시설임을 확인됐다. 6세기 전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의시설은 외곽에 돌을 쌓고, 안쪽에는 흙을 채워 만든 ‘토석제단(土石祭壇)’의 구조로 드러났다. 아랫단은 원형, 윗단은 정사각형의 형태다. 원형 아랫단 위에 사각형의 윗단이 올려진 내방외원(內方外圓) 형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 기단부 아래의 구덩이에서 수습된 목탄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한 결과 기원후 400~44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됐다. 남쪽에서는 토석제단을 파괴하고 6세기 후반쯤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실이 발견됐다. 연구원 측은 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후 제의시설의 기능이 없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남아있는 시설의 전체 규모는 지름 10m, 높이는 1~1.4m 정도로 파악됐다. 아랫단은 지름 10m 정도의 평면 원형이다. 발굴조사단 측은 제의시설의 역사 및 추가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제의시설과 관련된 공간에 대해 추가 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대가야의 국가제사에 관한 직접적인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에 적힌 신라의 국가제사에 대한 기록, 큰 행사에 소를 잡아 제사를 지냈다는 신라비(新羅碑) 기록 등을 통해 대가야의 국가제사 혹은 유력 집단의 제사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배 책임조사원은 “이번에 발견된 연조리 제의시설은 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지만 대가야를 포함한 가야문화권에서 처음 확인된 제의시설”이라며 “대가야 왕도의 중심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관련된 제사시설 추정 지점도 확인돼 조사 중이다”라고 밝혔다. 삼국 등 고대 국가에서는 국가제사가 나라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만큼 이번 발굴은 대가야 국가제사의 실체를 밝히고, 대가야가 독립 국가로서 확고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재차 확인할 계기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