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터만 남은 삼척도호부 관아지, 사적으로 지정

조선 초부터 600년 이상 삼척 중심지

4차례 발굴과 김홍도 그림 등 조사

고려,신라 때도 중요한 거점으로 추론

김홍도(1745~1806)가 그린 ‘금강사군첩’에 포함된 죽서루 그림은 지금은 터만 남은 조선시대 삼척도호부 관아지의 규모와 위용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다. 개인소장. /사진제공=문화재청김홍도(1745~1806)가 그린 ‘금강사군첩’에 포함된 죽서루 그림은 지금은 터만 남은 조선시대 삼척도호부 관아지의 규모와 위용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다. 개인소장.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선 초부터 지금까지 600년 이상 삼척 지역 통치의 중심지였던 강원도 삼척시 ‘삼척도호부 관아지(三陟都護府 官衙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8-2번지 일원의 문화재구역 2만9,186㎡의 ‘삼척도호부 관아지’를 사적으로 지정한다고 20일 밝혔다.



‘삼척도호부 관아지’는 삼척이 1393년(태조 2) 삼척부로 승격되고 1413년(태종 13) 삼척도호부로 지명이 변경된 후, 1895년(고종 32) 삼척군으로 개명될 때까지 조선 시대 삼척 지역 통치의 중심지였던 ‘삼척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자리다. 조선시대 내내 지역 중심지였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은 소실되고 터만 남았다. 인근에는 지난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죽서로’와 2007년 명승으로 지정된 오십천 등만 남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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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가 유리건판사진으로 촬영한 삼척 도호부 객사. /사진제공=문화재청일제 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가 유리건판사진으로 촬영한 삼척 도호부 객사. /사진제공=문화재청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전하는 삼척도호부 공해조(公?條)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삼척도호부 관아는 객사(客舍) 50칸, 아사(衙舍) 91칸, 향청(鄕廳) 10칸, 훈련청(訓練廳) 6칸, 군기고(軍器庫) 20칸 등으로 이뤄져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총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객사, 동헌, 내아 등 관아의 중요 건물 유적과 삼척읍성의 남문지와 체성부를 확인했다. 더불어 김홍도의 ‘금강사군첩 죽서루 그림’ 등 많은 고문헌 기록들을 찾아냈다.

삼척도호부 관아터 주변에 현재는 죽서루와 오십천만 남아 전한다. /사진제공=문화재청삼척도호부 관아터 주변에 현재는 죽서루와 오십천만 남아 전한다. /사진제공=문화재청


문화재청 보존정책과 관계자는 “그간의 발굴과 기록 조사를 통해 실체가 확인된 삼척도호부는 조선 시대 삼척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도호부 관아 유적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됐다”면서 “발굴조사에서 조선뿐 아니라 신라와 고려 시대 유적과 유물도 함께 확인됐는데 이를 통해 ‘삼척도호부 관아지’와 그 일대가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와 신라를 거슬러 까지 삼척 지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온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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