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알짜 노선 반납하라"…대한항공, 아시아나 인수 위기?[뒷북경제]

공정위, 일부 노선 운수권·슬롯 반납 조건부 승인

장거리 운항 못하는 국내 LCC, 운수권 흡수 불가

깐깐한 해외 심사 트렌드 따라야 하는 고민 반영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합병(M&A)을 조건부 승인하기로 잠정 결정했습니다. 통합으로 독과점이 발생하는 노선의 운수권과 슬롯(공항 이착륙 시간)을 반납하는 것이 조건입니다. 일각에서는 항공사의 핵심 무형 자산인 ‘알짜 노선’의 운수권이나 슬롯을 반납해야 한다면 대한항공이 굳이 큰 돈을 들여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정위의 결정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습니다.








◇공정위 “알짜노선 운수권·슬롯 반납하라” =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보고서를 29일 발송했습니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11월 아시아나 항공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계약을 맺고 지난 1월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한 지 약 1년 만에 나온 결론입니다.

공정위는 두 기업의 계열사를 포함한 5개 사(대한항공·아시아나·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가 운항하는 약 250개 노선을 분석하고 총 119개(항공여객 87개, 항공화물 26개, 기타 6개) 시장을 획정해 각각의 경쟁 제한성을 분석했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주로 항공여객 87개 시장입니다. ‘인천~LA’ ‘인천~뉴욕’ ‘인천~장자제’ ‘부산~나고야’ 등 점유율 100%인 독점 노선 10개를 비롯해 일부 노선에서 경쟁 제한성이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정위는 통합 항공사가 독점이 예상되는 일부 노선의 운수권을 반납하도록 했습니다. 각국이 운수권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없는 유럽·중국 등 ‘항공 비자유화 노선’에서 잔여 운수권이 없어 신규 진입이 불가능한 경우 반납 대상입니다. 반납된 운수권은 국내 항공사에만 배분됩니다.

슬롯의 경우 ‘경쟁 제한성이 생기지 않도록 하거나 점유율이 높아지는 부분을 해소하는 수준’에서 일부를 반납하도록 했습니다. 혼잡 공항 여부와 신규 진입 항공사의 슬롯 보유 현황이 주된 판단 기준입니다. 인천·런던·파리·뉴욕 등 혼잡도가 높은 주요 공항의 슬롯이 재배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항공기. /연합뉴스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항공기. /연합뉴스




◇운수권 반납하면 가져갈 국내 항공사가 없다 = 정부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서 회수한 운수권은 국내 항공사에만 재배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신규 진입할 국내 항공사가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특히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 ‘인천~LA’나 ‘인천~뉴욕’ 등 장거리 노선을 운행할 만한 대형 기종을 보유한 곳은 없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LCC가 대형기를 새로 구매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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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LCC가 회수한 운수권을 배분받지 못하면 자연스레 외국 항공사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게 됩니다. 통합 항공사가 승객 이용률이 높은 알짜 시간대 슬롯을 반납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대한항공 측이 고용유지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운항 횟수와 승객이 줄었을 때 장기적으로 중복 인력 감축의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국제공항 아시아나항공 화물터미널에서 직원들이 보잉 747-400F 화물기에 미주,유럽등으로 수출될 반도체들 첨단수출품들을 싣고 있다. /이호재기자인천국제공항 아시아나항공 화물터미널에서 직원들이 보잉 747-400F 화물기에 미주,유럽등으로 수출될 반도체들 첨단수출품들을 싣고 있다. /이호재기자


◇‘글로벌 기업결합’ 심사 맡은 공정위의 고민 = 경쟁당국인 공정위라고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해외 경쟁당국과 함께 심사하는 ‘글로벌 기업결합’의 특성상 깐깐하게 심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공정위의 입장입니다. 양 사는 앞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 해외 주요 경쟁당국의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린 주요 배경으로 까다로워진 항공 관련 국제 심사 트렌드를 들고 있습니다. EU 경쟁당국은 올해 캐나다 1, 3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와 에어 트랜셋의 합병을 불허했습니다. 스페인 1, 3위 항공사인 IAG와 에어유로파는 통합 이후 독과점을 해소할 신규 항공사까지 찾아냈으나 불충분하다는 EU 경쟁당국의 판단에 따라 합병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가 우리 기업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결정을 내리면 앞으로 우리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외국 기업에 대한 심사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글로벌 심사 기준이 있는데 우리가 낮은 기준을 적용해버리면 외국 독점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각 경쟁당국이 자국 이익 위주로 심사해버리면 앞으로 우리 기업활동에 더 장애요소가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정위는 내년 1월 말께 전원회의를 열어 심의를 시작하되 시정조치안을 바로 확정하기보다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 상황을 봐가며 추가 회의를 열어 결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공정위의 조치가 해외 당국의 조치와 상충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협의도 지속한다는 방침입니다.



세종=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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