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시작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새로 다가올 세기에 대해 갖가지 꿈을 그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 사이 경제는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한 시대를 담아내던 문화의 산물과 현상들은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미래의 문화재감들이 사라져가는 상황을 심각하게 느낀 문화재청은 외국 사례들을 조사하고 공부해 지난 2001년 ‘등록문화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배경은 이러하다. 이전까지는 유물을 원래 형상대로 동결(凍結)하는 ‘지정문화재 정책’만 있다 보니 문화재로 지정되면 불편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미리 없애버리는 현상이 연이어졌다. 그래서 ‘개항(1876년) 이후 만들어진 물건 중 50년이 지났고, 기념이 되고 상징적 가치가 있으며, 시대를 반영하거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문화재로 ‘등록’하도록 하는 유연한 보존 기준의 새로운 문화재 종류를 신설했는데 그것이 등록문화재다.
새로운 생활 방식과 설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못질 한번 하려 해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는 동결보존 원칙의 경직성 때문에 사용자들에게 큰 불편을 끼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반영해 등록문화재는 외관과 내부의 중요 부위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뒀다. 또한 소유자가 문화재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해야만 조사를 할 수 있고 등록 여부도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소유자의 보존 의지로부터 문화재 등록의 절차가 시작된다고 하겠다.
2021년 8월 현재 908건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탈 것으로 대한제국 시대 순종 황제 내외가 탔던 ‘순종어차(純宗御車)’와 ‘순종황후어차(純宗皇后御車)’를 비롯해 ‘기아 경3륜 트럭’ ‘신진 퍼블릭카’ ‘현대자동차 포니’ 등이 있다. 볼 것으로는 19세기 말 관보 형식으로 펴냈던 ‘한성순보’와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우리 역사상 최초의 과학 종합 잡지로 창간된 ‘과학조선’, 그밖에 ‘만화 코주부 삼국지’와 ‘고바우 영감 원화’ 같은 것들이 등록문화재가 됐다.
그런데 근현대기 유산이 신생 문화재로서 보존의 울타리에 진입하는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존의 법 테두리에서 다루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근현대 문화유산은 소유주나 소비자들이 현재까지도 사용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새로 ‘나이(50년)’가 들어 문화재 반열에 오르는 대상물이 있는 한편 그 연한에 차지 못한 채 소멸?폐기돼가는 귀중한 것들도 상당히 많다. 따라서 주변의 이 같은 유산들에 대해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하고 전문가와 행정기관에서 면밀하게 조사해 예비문화재로 목록화해 관심의 범주로 품을 필요가 있다.
이에 지난 수년간 문화재청은 관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근현대 문화재를 독립적으로 다루는 ‘근대현대문화유산의 보전?관리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고 있다. 이 법률이 잘 다듬어져 우리의 바로 윗대인 아버지·할아버지 세대가 만들어놓은 가까운 시기의 유산들을 우리 세대에서 보존해 아들?딸, 손자?손녀 세대를 거쳐 다음 세기에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는 날을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