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지난 5년간의 성과는 적극 부각하면서도 최근 불거진 월북 사태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통신 조회 논란 등 불편한 현안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대신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직접 거론하며 ‘국민 통합’을 화두로 던져 야당의 반발을 샀다.
문 대통령은 3일 청와대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며 “적대와 증오와 분열이 아니라 국민의 희망을 담는 통합의 선거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국민들께서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주시고 좋은 정치를 이끌어주시기 바란다”며 투표를 독려했다. 적폐 청산, 검찰 개혁, 코로나19 방역,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을 추진하며 임기 내내 이어진 진영 갈등을 국정 동력의 최대 걸림돌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 명분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도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각계 인사들과 화상으로 연결한 신년 인사회에서도 “우리 모두 더욱 통합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월북 사태에 대한 언급 없이 “우리 정부는 대화와 함께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방력을 튼튼히 했다”고 말했다. 불과 이틀 전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이와 동떨어진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 논란과 관련해서도 함구한 채 “권력기관이 더 이상 국민 위에서 군림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개혁을 제도화했다”고 자평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남은 과제로 △국민 삶의 완전한 회복 △선도 국가 시대 개막 △선진국 수준의 삶의 질 향상 △평화의 제도화 등을 제시했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 우려를 차단하듯 마지막까지 민생을 챙기겠다는 의지다.
특히 주택 문제와 관련해 “최근 주택 가격 하락세를 확고한 하향 안정세로 이어가면서 실수요자들을 위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겠다. 다음 정부에까지 어려움이 넘어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특별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최대한 두텁고 신속하게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K산업·K방산·K방역·K문화를 일일이 언급하며 “누구도 우리 국민이 이룬 국가적 성취를 부정하거나 폄하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북문제를 두고는 “평화는 제도화되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종전 선언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국제 제재와 코로나19 등으로 임기 내에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기 어려움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정권) 출범 당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이었다”며 “우리가 주도해나간 남북·북미대화에 의해 지금의 평화가 지탱돼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딴 세상 인식” “자화자찬” “허무맹랑한 소설” 등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황규환 대변인은 “편 가르기로 일관했던 대통령에게 ‘통합의 선거’를 운운할 자격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더기 불법 사찰을 자행하는 ‘괴물 공수처’를 탄생시키고서 ‘권력기관 개혁’을 치켜세웠다”며 “새해 벽두부터 군의 경계 실패가 드러났지만 질타는커녕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방이 튼튼해졌다’는 허언으로 국민을 기만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