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학생들의 공학·자연 계열 대학 재학생 비율은 높아졌는데 막상 입학하거나 졸업 후 입사하면 이들을 이끌어줄 ‘롤모델’이 없어요. 과학기술 분야의 우수한 여성 인재 육성을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새해 2년의 임기에 돌입한 주성진 신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 회장은 5일 대전 반석동의 한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신진 여성 과기인들의 표상이 될 중견 리더들의 육성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과학기술계에서 조직의 머리에 해당하는 여성 출신 기관장이나 임원들은 간혹 배출되고 있지만 여성 교수, 간부 등과 같이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 책임자급 직책으로의 승진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20년도를 기준으로 국내 대학 여성 교원 비율을 보면 자연대는 16%, 공대는 3.7%에 불과하다”며 “일부 대학 학과에서는 아예 여성 교수가 없는 경우도 있어 여학생들이 본받을 만한 롤모델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 출연 연구소들을 살펴보면 여성 재직 비율은 12.4%, 승진 비율은 16%에 그치고 있다”면서 “책임자급 연구자의 여성 보직 비율도 저조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이나 연구 기관 등에서 이처럼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다 보니 여학생들이 이공계 학문을 전공하고도 일반 공무원으로 취업하려고 전향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주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 회장은 “현재 여성 채용 및 보직 비율을 30%대까지 높이는 경우가 확산되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단순히 여성 비율을 끼워 맞추기 위한 머릿수 채우기 수준”이라며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자신의 의견을 주도적으로 개진하기 힘든 하위 직종만 늘렸거나 (공학·자연 계열 연구자가 아닌) 행정직 여성을 통계에 끼워 넣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앞으로 여성 과기인들이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초급·중급 간부로 고르게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유리천장 극복을 위해 정책 당국에)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의견을 적극 개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주 회장은 과거 남성 주류로 운영되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유리천장을 깬 롤모델이기도 하다. 약 34년 전 ADD가 처음으로 여성에게도 문을 열었을 때 지원해 ADD 최초의 여성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이후 수석연구원·대외협력실장 등을 지냈고 대외적으로는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 이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여성과학기술인육성위원으로 활동했다. 2015년에는 과학의 날 과학기술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주요 여성 과기인들의 사회 활동 경험을 신진 여성 후배들에게 나눠 유리천장을 깨는 데 일조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여성 과기인들 중에는 팀장·부장과 같은 보직을 피하고 자신의 연구만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후배 여성 과기인들을 이끌어줄 중간 리더로서 소명감을 갖고 보직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도록 여성들 스스로도 자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 회장은 “내년이면 KWSE가 30주년을 맞이한다”며 “지난 30년간의 성과를 집대성하고 앞으로 또다시 30년간 KWSE가 잘해나갈 수 있도록 운영 조직, 제도 등을 총점검해 지속 발전의 기반을 닦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글로벌 연구 협력 네트워크를 미국을 넘어 유럽·호주 지역까지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