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날씨를 확인하듯이 혈액 속 포도당을 비롯해 케톤·젖산·알코올 수치까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 포드 애벗 CEO)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정맥 채혈 없이도 몸에 센서를 부착해 자신의 상태를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의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미래가 성큼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헬스케어 기업 애벗이 포도당·케톤·젖산·알코올 등의 수치를 체크하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바이오센서 ‘링고’를 출시하기로 하면서다.
6일(현지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몸이 말하는 독특한 언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데이터로 번역해주는 장치 링고를 올해 중 유럽에 출시할 예정”이라면서 “다양한 생체 신호를 해석하고 환자와 의사 사이에 공통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만들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기조연설은 CES 역사상 최초로 헬스케어 기업이 맡게 된 만큼 많은 관심이 모였다. 애벗은 지난 2014년 당뇨 환자들을 대상으로 주삿바늘을 이용한 정맥 채혈 대신 5㎜의 작은 바늘이 들어간 센서를 팔 뒤편에 부착해 혈당을 측정하는 기기를 대중화한 바 있다. 이제는 당뇨뿐 아니라 각종 만성질환을 미리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관심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의료용이 아닌 일반 소비자용으로 출시된 제품으로는 처음이다. 포드 CEO는 “그간 당뇨에 집중해왔지만 350만 명의 이용자들에게서 확보한 데이터와 전문성을 이용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한다”며 “각기 다른 생체 신호가 보내는 다양한 만성질환을 해석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링고를 통해 만성질환 관리뿐 아니라 병이 심각해지기 전에 초기의 작은 신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포드 CEO는 “링고는 분산화(Decentralization)·민주화(Democratizing)·디지털화(Digitization)된 기술”이라며 애벗의 기술도 CES의 다른 미래 기술과 함께 다뤄지기에 손색이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다. 사람을 구하고 절망과 싸워 이긴 희망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애벗의 사례처럼 헬스케어가 디지털 기술을 만나 전문의와 환자를 가르던 문턱이 사라지고 있다. 기존에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은 많게는 2~3주에 한 번꼴로 병원을 방문해 채혈·소변검사를 하고 며칠 후 다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했다. 미리 예약을 잡지 않으면 몸에 이상을 느껴도 다음 검사 날짜까지 기다려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이제는 환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손쉽게 집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병원에서 검사한 혈액·소변 수치가 아니더라도 의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이날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LVCC) 노스홀에서 열린 헬스케어 스타트업 비부(vivoo) 전시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참가자가 모여 설명을 들었다. 비부는 집에서 자가 소변검사를 진행한 뒤 이에 맞춰 영양 상담과 생활 습관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변검사를 진행한 뒤 2분만 기다리면 마그네슘·비타민C·칼슘·케톤 등 여러 수치가 나타나고 이를 통해 신장·간 등 각종 기관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병원을 가지 않고도 2분 만에 소변검사가 가능해 신장과 간 질환 환자들에게 유용하다. 스페인의 헬스케어 기업 이누바는 3차원(3D) 신체 스캔을 통해 몸에 관한 300여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특정 공간에서 신체 상태를 체크하면 2~3분 내로 결과가 나오고 이용자가 스스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어린아이부터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도록 하는 자가 측정기도 나왔다. 국내 스타트업 키코(kiko)는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측정해 이를 기록하고 아이의 상태를 분석해 장기적으로는 각종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앤드류 박 키코 마케팅 총괄은 “영양 상태뿐 아니라 비만, 소화 장애, 신진대사 질환을 미리 분석해 성인이 돼 겪을 수 있는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