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영국의 유기동물 보호소에 다녀왔어요. 보호 기간은 언제까진지, 안락사는 언제 하는지 물어봤는데 질문 자체를 이해 못 하더라고요. 기다리면 주인이 찾아가는데 왜 안락사를 시키냐며, 주인이 안 찾아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냐면서요. 대부분의 반려동물이 등록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스템이죠."
얼마 전 한병진 수의사님과의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에요. 우리나라는 반려동물 등록 체계도 부실하고 일부러 동물을 버리는 사람이 워낙 많잖아요. 유기동물 보호소는 새 반려인을 기다리다 안락사 당하는 동물들로 넘쳐나구요. 그런데...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영국에는 유기견이 거의 없대요. 조금 충격이었죠.
고통의 악순환을 막는 중성화
한 수의사님은 지난해 11월에 제3회 동물복지대상(동물복지국회포럼 주관)을 받은 분이에요.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경기도수의사회 동물사랑봉사단 활동을 열심히 하시다가 수상하셨어요. 봉사활동은 주로 유기견 중성화 수술. 유기견 보호소의 개들이 새끼를 계속 낳게 되면 점점 개체수가 늘면서 감당할 수가 없게 되거든요. 수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 오신 셈이에요. 이런 분은 꼭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지구용에서 인터뷰를 요청드렸구요.
수의사님은 삶의 의미를 한참 찾아 헤매던 시절, 불교를 공부하시면서 동물을 위해 봉사해야겠단 결론을 내리셨대요. 세상 만물에 신세를 지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수의사로서 동물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래서 경기도 포천의 애신동산을 찾아가셨대요. 애신동산은 30년째 운영 중인 국내 최대 사설 보호소. 당시 애신동산에는 850여마리의 유기견이 살고 있었대요(지금은 400마리대로 줄고 봉사자들도 훨씬 많아졌단 소식).
"견사마다 새끼들이 태어나 꿈틀거리고 있었고, 죽은 새끼들은 고인 빗물에 둥둥 떠 있기도 했어요. 중성화를 하고 싶어도 사람을 너무 무서워해서 컨테이너 밑으로 숨거나 땅굴을 파고 들어서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하루에 몇 마리밖에 수술을 못 했대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수의사님. "흙먼지, 똥먼지 풀풀 날리면서 땅굴 속에 들어간 아이들을 잡아왔어요. 톱으로 합판 견사를 잘라서 밑에 숨은 아이들도 꺼내오고요. 그런 식으로 견사 서너 개의 중성화 수술을 끝냈더니 애신동산 운영진도 신나서 동참하고, 동물보호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에서도 수의사 분들을 초청해서 합세했어요. 나중엔 하루에만 4, 5개 견사를 끝낼 수 있었죠. 결국 1년이 안 돼서 애신동산 아이들이 거의 다 중성화 수술을 받게 됐어요."
중성화 수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수의사님은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요. "비참한 환경에서 죽는 강아지들도 많고 살아남는다 한들 1년 후에 또 새끼를 낳아서 악순환이 계속돼요. 암컷 한 마리가 1년에 8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데 몇 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1마리를 중성화하면 30마리를 입양시키는 것보다 낫습니다."
'동물복지'가 말이 안 되는 이유
다행히 뜻을 같이 하는 수의사님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처음에는 경기도수의사회 동료 수의사님과 함께 정례 회의 때 받는 회의 수당(차비조로 지급되는 5만원)을 모아서 봉사활동에 필요한 약값 등으로 쓰셨대요. 활동 인원과 범위가 늘면서 이제는 경기도 차원에서도 예산을 지원받으신다고. 그러다가 이번에 대표로 동물복지대상도 받으신 거죠. 그런데, 한 수의사님은 '동물복지'라는 말이 "말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 수의사님의 말씀 그대로 옮겨볼게요.
"동물들이 어떻게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복지'가 맞겠지만 우리나라는 환경 자체가 너무 열악해요. 개고기 도살장, 개 번식장, 학대가 널렸으니까요. 전쟁터에서 죽어나가는 판국인 거예요. 전쟁터에서 누굴 살리는 게 복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확히는 '동물학대방지상', '유기동물감소상'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수의사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동안 우리가 열악한 환경을 너무 당연히 생각했구나 싶은 깨달음+앞으로 훨씬 나아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어요. 영국이나 일본(일본도 유기견 자체가 거의 없대요)에 천사 같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데도 유기견이 없잖아요. 제도적 개선이 이뤄진다면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영국&일본처럼 바뀔 수 있구나 싶었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요. 당장 막막하다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간 동물들에게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란 믿음이 생겼어요.
아픈 동물들을 직업적으로 자주 보면 너무 괴롭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은 덜하시대요. "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따지면 봉사자들 중에 제가 꼴찌일 거예요. 하지만 너무 개들을 사랑하고, 가슴 아파서 눈물 흘리며 봉사하는 분들은 괴로워서 1, 2년 만에 그만두시더라고요."
답은 철저한 '등록제'
한 수의사님은 반려동물 등록제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반려동물 등록제는 생후 2개월 이상의 반려견을 등록(①내장형 마이크로칩 삽입 ②외장형 목걸이 걸기)하는 제도. 2014년부터 의무화됐지만 아직도 허점이 많아요. 차도 그만 안 차도 그만인 외장형 목걸이를 택하는 보호자도 많고, 아예 등록을 안 해도 큰 처벌이 없고(달랑 벌금 200만원), 반려견이 사망하거나 보호자가 바뀔 때 신고할 의무도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등록된 반려견의 비중이 아직 낮아요(2020년 기준 38.6%).
제도 운영이 잘 안되다 보니 칩 스캐너조차 구비하지 않은 유기견 보호소도 있대요. 내장칩이 삽입돼 있는 아이들은 칩 스캔만 거치면 보호자를 찾아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
수의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등록제를 철저히 하면 잃어버려도 금방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거고, 특히 선진국 수준(70%대)으로 등록이 되면 유기견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유기동물을 안락사할 일도 없을 거구요. 지금 동물 보호·관리에 쓰는 예산의 10%만 동물 등록·단속에 쓰면 됩니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느리게나마 노력하고 있어요. 2024년까지 반려동물 등록률을 70% 이상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고, 보호자가 전입신고를 하면 반려동물의 정보에도 자동으로 반영되게 하는 등의 개선방안(기사 보기)이 지난해 9월 확정됐어요. 국회의원들도 반려동물 등록 갱신 의무화(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양이 동물등록 의무화(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등의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구요.
마지막으로, 수의사님은 맹견과 모두의 공존을 위한 조치도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맹견은 산책할 때 입마개를 하도록 돼 있는데, 입마개를 안 하고 있다가 행인이나 다른 개를 공격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들려오잖아요. 공격성이 강하고 큰 상해를 입힐 수 있는 견종의 경우 동물병원에서 안전하게 송곳니 절치 등을 통해 사고의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는 게 수의사님의 말씀이에요. "송곳니를 자른다는 데 거부감이 들 수는 있겠지만 맹견이라도 밖에서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미연의 사고도 방지할 수 있어요. 결국 서로에게 나은 일이 아닐까요."
오늘 지구용...좀 길죠?근데 이게 끝이 아니에요. 반려인 대표로 수의사님께 이것저것 많이 여쭤봤거든요. 집에서 사는 댕댕이 고양이들이 정말 행복한 건지, 캣맘이 싫다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면 좋을지, 그런 질문들요. 다음 번에 이어서 전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