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6년 차 배우 정현준입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정현준은 또래 남자아이들 같지 않게 의젓했다. “영화 ‘기생충’의 말괄량이 다송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에 긴장했지만 그것도 잠시, 발랄하고 천진한 아이의 얼굴로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모습에 너도나도 엄마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게 만들었다. 어엿한 6년 차 배우이기도 하지만 그 역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하루 24시간이 짧은 12살 소년이었다.
정현준은 지난 2019년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기생충’에서 배우 이선균, 조여정의 아들 다송 역 맡아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정작 그가 연기를 시작한 것은 6살 무렵이었다. 이듬해에는 MBC 드라마 ‘당신은 너무 합니다’(2017)로 데뷔, 이후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부터 ‘더 킹 : 영원의 군주’ 이민호, ‘괴물’ 여진구 등 내로라하는 미남 배우의 아역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던 그는 영화 ‘특송’(감독 박대민)에서 박소담, 송새벽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당히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특송’은 예상치 못한 배송사고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박소담)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범죄 영화로, 정현준은 어쩌다 부모와 떨어져 반송 불가 수하물이 된 서원을 연기했다. 극 중 정현준은 경찰과 국정원의 타깃이 된 박소담과 함께 도심 한복판을 누비며 추격전을 펼친다.
“액션 연기가 좋아요. (‘특송’ 전부터) 원래 좋아했어요. 찍어보고 싶은 영화 장르 중에 하나였거든요. 박소담 배우님이 액션을 잘하고 거기에 또 뛰어들어서 연기까지 하니까 ‘나도 저렇게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그 액션을 따라 해 보기도 했어요.”
작품 말미 송새벽과 함께 바다에 빠지는 장면은 무섭기도 했다. 다른 액션 장면에는 두려움이 없었지만, 심해공포증이 있었기 때문. 스태프들이 물속에서 노래도 틀어주고 잘 챙겨준 덕분에 쉽게 촬영할 수 있었다. 악역인 송새벽이 무섭게 연기를 했지만, 그것도 연기인 것을 알기에 재밌게 받아들였다.
“하기 싫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 싫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자체가 이상한 거잖아요. 이런 날을 한 번 겪어봐야 다음에 익숙해질 수 있으니까 저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박소담과의 호흡은 두 번째다. ‘기생충’에서 미술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 케미를 발산한 바 있다. 8살 때 촬영한 작품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특송’ 작업을 위해 만난 박소담이 “박다송 오랜만인데”라고 반갑게 맞이해준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서원을 연기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쓴 점은 많은 이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절대 은하에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은하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는 대사도 다양한 버전으로 준비해 변주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늘 자신을 지켜주는 은하에게 “남자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는 대사는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살짝 연기하기 힘들었는데 ‘내가 서원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 부분을 나타내기 어렵기도 하니까 슬픈 감정을 생각하면서 하기도 했어요.”
그런 정현준에게 “실제로 그런 말을 써본 적이 있냐”고 묻자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옛날에 한 번 충격적이게 차인 적이 한 번 있었다”고 솔직한 연애담을 풀어 인터뷰장에 웃음이 번지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 연애를 딱 한 번 했는데 제가 고백을 받았어요. (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에는 다시는 연애를 안 하고 있습니다. 좀 커서 하려고요. 그 친구하고 헤어진 이유도 너무 (연애를) 빨리하는 것 같아서였거든요.”
이토록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정현준은 6살 때부터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부모님의 권유가 아닌 본인이 먼저 연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부모님이 TV를 볼 때면 앞에서 드라마 연기를 따라 하고는 했다. 어리지만 말 대신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다.
“제가 평소에 나타낼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을 연기를 하면서 조금 특별하게 나타낼 수 있으니까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오디션이 잘 잡히지도 않았어요. ‘당신은 너무합니다’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특송’까지 찍게 됐어요.”
연기 앞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진지하게 임하는 배우이고, 평소에는 한 살 터울의 형과 노는 걸 좋아하는 12살 소년인 정현준. 그중에서도 특히 만화를 그리는 게 취미다. 웹툰을 좋아하다 보니 직접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시작하게 됐다.
“그림을 배운 적이 있긴 한데 저는 직접 그리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자유롭게 표현하는 걸 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들은 ‘이걸 그려라. 저걸 그려라’ 하잖아요. 목적을 갖고 그리는 거니까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연기도 그림도 제가 평소에 나타낼 수 없던 그런 감정들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재밌기도 하고요.”
자신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정현준의 MBTI(성격유형지표)는 ‘재기발랄한 활동가’ 유형인 ENFP. 그는 “‘살짝 미치면 세상이 즐겁다’라는 설명이 나오더라. 내 생각에도 내가 너무 발랄해서 미쳐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말해 또 한 번 웃음을 안겼다.
“‘기생충’의 다송이가 저처럼 좀 발랄하고 까불거리기 때문에 실제 성격이랑 제일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주목받는 걸 좋아하거든요. 밖에서 저를 알아보면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주목을 더 많이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현준에게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보였다. 열정도 가득하고, 재능도 충분하기에. 그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며 여러 가지 꿈을 꾸는 중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5년 뒤, 10년 뒤 모습의 중심에는 항상 연기가 있었다.
“제가 만화를 그리다 보니까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거든요. 그런데 또 웹툰 작가들을 보니까 거의 하루 종일 작업도 해야 되고 힘든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웹툰 작가는 안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했어요.”(웃음)
“보통 제가 찍은 작품을 보면 엄마나 아빠나 형, 동생이 다 죽잖아요. 그래서 가족들이 다 살아 있고 코믹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저도 코믹한 연기를 딱 한 번만 찍어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저만의 개성 있는 캐릭터를 갖고 있는, 조금 더 업그레이드되고 더 성숙한 연기를 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그런 배우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