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19일에는 눈이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더 춥게 느껴졌다. 겨울이니까 그러려니 하기에는 동장군이 워낙 자주 찾아온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번 겨울은 매섭다. 미국 동부는 최근 폭설과 한파가 강타해 항공기가 결항하고 주민들이 정전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말 중국 헤이룽장성 기온은 영하 48도까지 떨어졌다. 추위는 지난 겨울도 심했다. 지난해 1월 8일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8.6도로 2001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았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는 북극의 찬바람이 몰아쳐 텍사스 450만 가구에 전기·수도·가스 공급이 중단되고 40여 명이 사망했다.
2년 연속 세계 곳곳이 추위에 덜덜 떤 원인은 라니냐에 있다. 라니냐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수온이 평소보다 낮아지는 현상이다. 지난 겨울 이곳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0.5도 이상 낮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지속돼 라니냐가 발생했다. 이번 겨울에도 라니냐 요건을 90% 이상 충족해 사실상 라니냐가 다시 생겼다. 2년 연속 라니냐가 온다고 해서 더블딥 라니냐라고 한다. 라니냐가 닥치면 북아메리카·유럽·동북아시아 등 북반구는 추워진다.
추운 겨울을 나려면 난방을 위한 에너지가 평소보다 더 많이 필요해진다.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1월까지 두 달 연속 적자를 낼 가능성이 커진 것은 급증한 에너지 수요 때문이다. 전년 동기 대비 수입 증가율이 높은 품목을 보면 12월이 석유제품(168.6%)·석탄(145.6%)·가스(120.4%)·원유(86.2%) 순이고, 1월(1~10일)이 석탄(395.2%)·가스(392.5%)·석유제품(149.8%)·원유(79.9%) 순이다. 모조리 에너지다.
지난해 말 유럽에서 천연가스 대란이 벌어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말 유럽연합(EU) 천연가스 가격은 연초 대비 400% 뛰었다. 가스 가격이 급등한 것은 날이 추워져 난방 수요가 늘어난 반면 EU 수요의 40%를 공급해온 러시아가 EU로 가는 야말-유럽 가스관 밸브를 잠가 수급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 밸브를 움켜쥐고 가스 패권국으로서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러시아의 가스관 밸브 잠그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과 2009년에도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 밸브를 막아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큰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에너지 최빈국이다. 유력 국가들의 에너지 무기화에 유럽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멕시코는 올해 원유 수출량을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내년부터는 아예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멕시코는 우리나라가 원유를 다섯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인도네시아는 이달 초 전력 부족을 이유로 석탄 수출을 금지했다. 한국·일본·필리핀 등의 요청으로 부분적인 수출 재개에 나섰지만 언제 다시 금지할지 모른다. 이들 국가를 대체할 방안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에너지 가격은 앞으로 상당 기간 오를 가능성이 높다. 국제 유가는 이미 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골드만삭스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럴 때 원자력발전이라도 제대로 준비해놓았으면 걱정이 덜할 텐데 아쉽다.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인 나라에서 원전발전량이 매년 올라간 것은 역설적으로 원전의 존재감을 말해준다. 지난해 12월 원전발전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은 겨울에 효율이 떨어진 태양광발전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2년 넘게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였다. 차기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더해 라니냐가 몰고 온 에너지 대란과 기약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대통령을 꿈꾼다면 에너지 백년대계부터 마련해야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국산 원전을 키우고 해외 에너지 자원을 확보할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 강국을 원한다면 에너지부터 챙기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