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간 작업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한 때는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중에는 희열을 느끼게 됐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서울농학교 학생들이 함께 만든 수어(手語) 전시 해설 영상 ‘눈으로 듣는 한양’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성은·윤지수 양은 20일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수어 해설 프로젝트는 11명의 서울농학교 학생들이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동안 시나리오 작성부터 영상 제작까지 전 과정을 직접 참여해 만들었다. 청각장애인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임 횟수는 18회. 역사 학습과 현장 견학, 시나리오 작성 요령 등 사전 교육에만 810분이 걸렸다. 제작 과정이 모두 정규 수업 시간을 끝낸 후 방과 후 학습을 통해 진행됐다. 강행군일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11명 중 6명이 원격 수업 형식으로만 참여한 것도 제약으로 작용했다. 특히 동영상에 직접 출연해 수어 대화를 나눴던 윤 양의 경우 지금까지 인공 달팽이관을 이용해 말로 대화를 해 왔고 수어도 중학교 때 진학한 후 배워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윤 양은 “일주일에 두 시간씩 영상을 만들거나 시나리오를 썼고 다 하지 못할 경우 집으로 가져와 마무리 지었다”며 “여름방학 때도 같이 모이는 등 정말 힘들게 작업했다”고 토로했다. 그가 담당 선생님께 “도망가고 싶다”고 하소연 한 것도 이때다.
초점은 ‘쉽고 재미있게’에 맞춰졌다. 교사나 서울역사박물관측에서 결정한 게 아니다. 원래는 해설 방식으로 하려 했지만 학생들이 논의를 통해 요즘 흔히 쓰는 어투의 대화 형식으로 바꾸었다. 18쪽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거의 대부분 책임졌던 김 양은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고 실감 나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몰입을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바꾸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며 “당시의 직업, 전쟁 무기, 훈련도감 등 학생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키워드를 모아 약 3주간에 걸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힘들게 작업한 만큼 완성한 후의 희열도 컸다. 김 양은 “혼자 하려고 하면 힘들고 지키지만 같이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배웠다”며 “이를 계기로 장애를 가진 이들도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윤 양도 “연습하는 게 힘들었지만 해내고 나니 뿌듯했다”며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먼저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물었다. 윤 양은 ‘엄마’라고 했다. 김 양도 비슷한 답이 나올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유튜브 시청자들’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면 기쁠 것 같다”는 것이다. ‘쏭은’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영상 편집 전문가를 꿈 꾸는 소녀 유튜버 다운 대답이었다.
이들이 세상을 향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윤 양은 “청각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만약 사회에 나간다면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양도 “내가 만든 동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소리가 안 들릴 텐데 어떻게 영상을 만들었는가 하는 댓글들이 많다”며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듣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것으로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