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코로나19 방역지원금 300만 원을 지급하는 14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하자마자 여야는 “35조 원 규모로 추경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없어 추경에 필요한 재원 대부분을 적자 국채로 마련하는 판인데도 대선 후보들은 나라 살림에는 관심이 없다.
정부는 14조 원 규모의 2022년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날 의결된 추경안은 24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와 국채 시장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추경 규모를 판단했다”면서 “가능한 정부의 추경 규모와 내용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최대한 존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안을 보면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 320만 명에게 방역지원금 300만 원을 추가 지급할 방침이다. 지난해 말 방역지원금 명목으로 100만 원을 지원했는데 지원 규모를 4배 늘렸다. 정부가 편성한 추경 14조 원 가운데 9조 6,000억 원이 여기에 투입된다.
방역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1조 5,000억 원이 투입된다. 40만 명분의 먹는 치료제를 추가 구매하기 위해 6,000억 원이 소요된다. 코로나19 중증 환자 병상을 1만 1,000개 늘리고 재택치료자 생활비를 지원하는 데 각 4,000억 원, 5,000억 원이 투입된다. 이외 1조 원 규모로 예비비를 보강하는 안이 추경안에 함께 담겼다.
추경에 소요되는 14조 원 중 11조 3,000억 원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다. 적자 국채는 정부 세입이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채권을 발행해 정부 부채를 늘리는 것이다.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통해 동원하는 금액은 2조 7,000억 원이다.
재원의 8할을 빚을 내 마련하기로 하면서 나라 살림은 보다 빠르게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을 편성할 때 국가 채무가 전년 본예산보다 108조 4,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봤지만 이번 추경으로 119조 7,000억 원 증가하게 됐다. 이와 맞물려 올해 말 전체 국가 채무는 1,064조 4,000억 원에서 1,075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50.1%로 오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 36%였던 국가 채무 비율이 50%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발생한 10조 원 규모의 초과 세수를 활용해 발행한 국채를 상환”하겠다지만 국가재정법에 따라 초과 세수의 40%(약 4조 원)는 지방교부금 등으로 내려보내야 해 국가 채무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여야 모두 14조 원 이상의 추경을 주문하고 있어 국회 심의 이후 추경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 19일 정부 측을 면담하고 세출 구조 조정 등으로 재원을 마련해 32조~35조 원 규모의 추경을 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한 여당 역시 증액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나랏빚을 전에 없이 늘리겠다면서도 여야는 물론 정부마저 이렇다 할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당장 국채 시장 급등부터 우려된다. 이날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전일보다 1.3bp(1bp=0.01%포인트) 오른 2.132%를 기록했다. 추경에 11조 원의 적자 국채가 발행된다는 소식 이후 2%대에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국채 금리가 뛰면 은행채와 회사채 금리 모두 영향을 받고 연쇄적으로 대출 금리까지 오를 수 있다. 서민 살림살이를 개선하겠다며 내놓은 추경안이 되레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추경이 인위적인 물가 상승을 일으킬 수 있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홍 경제부총리는 “정부가 책정한 14조 원의 추경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대부분 소상공인 대상 이전지출이라 물가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추경 규모가 더 늘어나 시중 유동성을 늘린다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