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검찰·경찰 등 정부 부처와 수사기관에 자문위원회가 속속 설치되고 있다. 경제·산업계에 파장이 큰 법률인 만큼 민간 전문가를 주축으로 한 자문위원회가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안 그래도 애매모호한 중대재해법이 자문위원회 해석을 통해 더욱 혼선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자문위가 난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애매모호한 법에 ‘사공’까지 늘어나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2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현재 확인된 자문 기구만 7개다. 주무 부처인 고용부에는 무려 4개의 자문 기구가 있다. 고용부는 중대산업재해 수사심의위원회, 중대산업재해 자문단, 산업안전보건정책위원회(가칭), 지역별 안전보건협의체 등을 운영한다. 검찰과 경찰이 함께하는 ‘중대재해 사건수사 실무협의회’를 포함하면 고용부가 관여하는 중대재해 자문 기구만 5개에 이른다.
고용부 수사심의위원회는 10~15명으로 구성되는데 법조·의학·산업안전보건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다. 업무상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판단이 불분명할 때는 고용부 수사심의위가 사건에 대한 수사 개시를 사실상 결정한다. 중대산업재해 자문단도 수사심의위처럼 법조·의학·산업안전보건 전문가 30여 명으로 꾸려진다. 고용부는 이와 함께 산업안전보건정책위원회, 지역별 안전보건협의체 등을 운영해 중대재해법 안착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부와 함께 중대재해법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과 경찰도 자문위원회를 둔다. 우선 검찰은 대검찰청 산하에 자문 기구인 안전사고 전문위원회를 설치해 운용하기로 했다. 고용부와 경찰청에서 추천받은 안전사고 전문가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고용부의 신설 위원회와 동일하다. 검찰 자문위원회는 중대재해 원인을 분석하고 형사처벌 시 양형 기준을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고용부·검찰·경찰 등 3개 기관이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전문성 확보와 협업을 위해 마련한 임시 조직도 계속 늘고 있다. 대검은 자체적으로 중대재해 수사지원 추진단을 가동 중이다. 3개 기관은 중대재해 사건 수사 실무협의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수사 실무협의회는 사건 초기 단계부터 수사력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정부 부처와 검경 등 수사기관 산하에 자문위원회가 늘어나는 상황은 중대재해법의 안착을 위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영계와 법조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형사처벌 수준이 훨씬 높고 안전보건 관리 체계가 애매모호해 준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법적으로 고의와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일반인들이 과잉 수사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분야 민간 전문가가 포함된 자문위원회 의견을 듣고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각종 자문위원회가 난립하면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위원회별 역할이 겹치지 않고 제대로 된 분업화가 이뤄진다면 긍정적”이라면서도 “역할이 겹치고 위원회별 요구가 중구난방으로 이어진다면 법 시행 초기 더 혼란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정부 자문위원회 운영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자문위원 선발에 대한 공정성 문제, 형식적인 운영, 자문위원 중복 등의 문제는 줄곧 지적돼왔다. 특히 산업안전보건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 비해 많지 않은 탓에 위원들의 겹치기 위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산업안전 관련 위원회의 한 위원은 “정부 위원회 위원을 보면 정부 연구용역 발주를 받은 분들이 상당히 많고 다른 위원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분들”이라며 “위원회도 정부 관계자의 일방적인 정책 공표로 끝나 ‘의견을 듣는 게 아니라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건가’라는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고용부도 소관 위원회는 17개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보면 회의가 1~3회만 개최된 위원회가 4곳이다. 심지어 2곳은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수사심의위는 중대산업재해 수사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위원회들의 역할을 분명히 해 옥상옥 구조나 형식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없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