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정치인들의 인터뷰 자리에 MZ세대의 술자리 놀이인 ‘밸런스 게임’이 등장한다. 표창장을 위조한 딸과 상습 도박 아들 중 한 명을 꼭 키워야 하면 누굴 고를 것인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주어진 질문이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예고 없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향한 영상 편지를 요구 받기도 한다. 오랜 정치 경력으로 미디어 응대에 자신 있다는 정치인들이 언뜻 가볍지만 뼈있는 질문 앞에 하나같이 난처한 웃음을 터트린다. “조국이한테 죽었다”는 우 의원의 농담은 상당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동안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풍자 프로그램이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에서 방영되고 있는 ‘SNL(Saturday Night Live) 코리아’다. 3월 대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 SNL코리아의 날카로우면서도 경쾌한 정치풍자가 쿠팡플레이로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작을 이끄는 유성모·권성욱·오원택 PD는 최근 서울 상암동 에이스토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처음부터 정치풍자를 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다. 대선 정국이 맞물린 덕분이지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출연한 정치인들이 MZ세대를 비롯한 젊은층과 소통하고 싶었고, 웃음 포인트를 주다 보니 그간 한국에서 볼 수 없던 콘텐츠가 나왔다는 것이다.
정치풍자의 중심인 ‘주기자가 간다’ 코너를 맡고 있는 오 PD는 “기성세대와 MZ세대 등 세대 간 부딪힘이 날것으로 보이는 것”을 인기의 비결로 꼽았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순수한 느낌으로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 ‘주기자’ 캐릭터다. 유 PD는 “주현영(출연자)에게 캐릭터를 개발해 오라고 숙제를 줬는데 대학 토론배틀에 나오는 설익은 대학생 캐릭터를 가져왔더라”며 “코너들을 준비하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나서 접목했는데 녹화 날 너무 웃겼다”고 돌아봤다. 새로운 히트 코너로 방송 오프닝 영상이 나오기 전에 배우들이 이재명·윤석열·안철수 등 대선 후보 부부와 비슷한 분장을 한 채 풍자 콩트를 하는 콜드 오프닝도 있다. “좀 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부분에 재미를 집중해보자는 취지”라는 권 PD의 의도대로 처음부터 시청자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데 성공했다.
SNL코리아의 핵심인 세태풍자의 퀄리티는 OTT 플랫폼을 만나면서 더 높아졌다. 대표 코너인 ‘위크엔드 업데이트’에서는 명품과 한정판 운동화를 구입하려는 ‘오픈 런’ 등의 사회 현상을 다루고, 코로나19 시대 자영업자로 살아남는 법을 다룬 영상에선 오락가락 방역수칙을 풍자한다. 오 PD는 “SNL의 DNA에 사회·정치풍자가 들어 있다”며 “세대가 분리되면서 공통의 관심사가 사라지는 시대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를 발굴하려 세심하게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OTT 예능 가운데 높은 화제성을 이어가는 이유다. 처음에는 OTT가 접근성 면에서 쉽지 않겠다며 반대했다는 유 PD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묘사할 수 있게 됐다”며 “OTT에서는 리얼하게 가도 되겠더라”고 말했다. 권 PD는 “예전에 시청률로 반응을 봤다면 지금은 주변에서 재미있게 봤다는 연락으로 반응을 가늠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의 풍자 콘텐츠가 그랬듯 자칫 대선 후 화제성과 표현 수위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유 PD의 반응은 덤덤하다. “4년에 한 번 오는 월드컵, 올림픽처럼 대선도 5년에 한 번 오는 빅 이벤트로 비유할 수 있어요. 대선이 끝나면 풍자가 사그라든다기보다, 동시대인들이 그때 관심 있어 하는 또 다른 사회적 관심사와 공감할 이슈를 찾아 다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