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연세암병원 폐암센터] 각과 전문의 주2회 합동진료…폐암 더이상 불치병 아니다

흉부외과·종양·호흡기내과 등

모든 의사들 치료방법 열띤 토론

폐암 유형·유전적 특성 등 고려

환자별 맞춤치료로 생명 연장

임상연구, 신약 개발 이어지기도

연세암병원 각 과의 전문의들이 폐암센터에서 표준 치료를 적용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다학제 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연세암병원 각 과의 전문의들이 폐암센터에서 표준 치료를 적용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다학제 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환자 컨디션이 어떤가요. 방사선치료 반응이 좋으면 임상시험 참여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5일 오후 12시 30분 연세암병원 회의실. 흉부외과부터 종양내과·영상의학과·방사선종양학과·호흡기내과·병리과에 이르기까지 폐암센터 모든 진료과의 전문의들이 열띤 토론을 진행 중이다. 오후 외래진료 전까지 환자 10명의 차트를 모두 검토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연세암병원에서 치료받는 폐암 환자들은 대부분 폐에 생긴 암이 여러 장기로 전이 됐거나 4기 이상으로 진행돼 표준치료를 적용하기 어렵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더이상 방법이 없어 절망하는 환자들도 많다.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에 소속된 20명이 넘는 전문의들이 매주 이틀씩 점심시간을 쪼개 회의에 참석하는 건 이런 환자들의 생존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다.




영상의학과와 병리과, 호흡기내과가 내원 환자의 폐암 여부와 세부 유형을 진단하면 흉부외과와 방사선종양학과, 종양내과가 진료과별 전문성을 발휘해 맞춤형 치료를 맡는다. 성별과 연령, 동반 질환은 물론 폐암의 유형과 병기, 유전적 특성 등을 고려해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를 제공하려면 다학제 진료를 통한 집단지성이 필수다. 종양내과는 약물치료와 신약 임상 등의 아이디어 제공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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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10명의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은 100가지가 넘는다. 모든 환자에게 천편일률적 방법을 적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폐암 치료의 묘미”라며 “다학제 진료를 통해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던 환자에게 묘안을 제시할 때, 진료 현장의 일원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 의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폐암 환자들의 생존율과 생존기간은 향상되는 추세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폐암 5년 생존율은 1993~1995년 12.5%에서 2015~2019년 34.7%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폐암 환자 3명 중 2명은 5년 이내 사망한다.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36.4명이 폐암으로 사망했다. 20년째 암 사망률 1위를 기록 중이다. 폐암은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데다 종양의 특성이 매우 다양해 치료방법을 찾기가 까다롭다.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항암제 만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폐암 환자들에겐 때때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신약후보물질이 해법이 된다.

김 교수는 종종 몇달 전 폐색전증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했다가 우연히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에서 2기 폐암으로 진단받았던 김영수(가명·69)씨를 떠올린다. 김씨는 고령인 데다 오랜 기간 파킨슨병과 만성 신부전을 앓으며 전신 상태가 좋지 못했다. 과거 흡연기간이 길어 폐기능도 크게 저하된 탓에 무리하게 수술을 강행하기도 힘든 상태였다. 하지만 다학제 진료를 통해 체부정위방사선치료를 받은 뒤 면역항암제 임상시험에 참여하며 종양 크기가 줄어드는 기적 같은 반응을 보였다. 김 교수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말기 환자가 폐암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며 “임상시험은 종양내과 의사의 또다른 무기”라고 소개했다.

(왼쪽부터) 연세암병원 조병철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생명과학부 김재환 연구원, 김창곤 교수가 임상 참여 환자의 경과를 확인 중이다./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왼쪽부터) 연세암병원 조병철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생명과학부 김재환 연구원, 김창곤 교수가 임상 참여 환자의 경과를 확인 중이다./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을 맡고 있는 조병철 종양내과 교수는 임상시험 담당 74명과 전임상시험 담당 42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1월 현재 가동 중인 신약 임상 프로그램은 123개다. 작년 한해 동안 1146명의 환자가 폐암센터 신약 임상 연구에 참여해 생명연장의 기회를 얻었다. 조 교수는 “최근 몇년간 폐암 분야에 혁신신약이 등장하면서 치료성적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가 높다”며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투여 후 내성이 생겼거나 매우 드문 유형의 돌연변이에 의해 유발된 폐암은 치료제가 전무하다. 이런 환자들에겐 신약 임상 프로그램 참여가 마지막 희망이기에 공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폐암 환자들의 생명연장을 위한 헌신은 혁신신약 개발로도 이어지고 있다. 국산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지난해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는 근거가 된 임상연구와 미국식품의약국(FDA) 가속승인을 받은 이중항암항체 ‘리브레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의 전임상 연구, ALK 돌연변이 폐암에 사용되던 표적항암제 ‘자이카디아(성분명 세리티닙)’가 ROS1 돌연변이 폐암에도 효과가 있음을 확인한 임상연구는 연세암병원 폐암센터가 거둔 대표 성과다. 2년 전 EGFR 돌연변이 폐암으로 진단받고 5번의 치료에 모두 실패해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연세암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이지성(가명·56)씨는 렉라자와 리브레반트 병용요법 관련 임상시험에 참여한 뒤 종양 크기가 70% 가량 줄었다. 현재 약물치료를 지속하며 15개월 넘게 생존하고 있다.

조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전이성 폐암이 진단된 순간부터 절망에 빠져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접할 때마다 너무도 안타깝다”며 “폐암은 더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치료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끝까지 치료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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