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로부터 허락을 받았더라도 임의로 법원의 접근 금지 등 임시보호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A 씨는 피해자 B 씨와 2018년 3월부터 7월까지 동거하던 중 가정폭력을 저질러 같은 해 9월 법원으로부터 B 씨에 대해 접근 금지 등을 처분 받았다. 하지만 A 씨는 2018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경까지 여러 차례 B 씨의 주거지에 접근하거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법정에서 A 씨는 “B 씨 집에 접근하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B 씨의 승낙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1심은 A 씨의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A 씨의 혐의 중 임시보호 명령이 나온 뒤 1달가량 B 씨 집 근처에 접근한 점은 무죄로 판단했다. 당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B 씨는 A 씨에게 자신의 집 주변 고양이들을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고 A 씨가 관리 방법 등을 문의하면서 연락을 하게 됐는데 이는 보호 대상이자 피해자인 B 씨가 A 씨의 접근과 연락을 양해한 것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2심은 “법원의 임시보호 명령은 피해자의 양해 여부에 관계없이 피고인에 대해 접근 금지 및 문언 송신 금지를 명하고 있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또 설령 B 씨가 고양이 관리 지시를 하면서 A 씨에게 연락하거나 주거지 접근을 허락했다고 해도 법원의 허가 없이 피해자의 양해로 A 씨의 명령 위반이 범죄가 아닐 수 있게 된다면 이는 개인의 의사로 법원의 명령을 사실상 무효로 만드는 셈이므로 법적 안정성을 위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2심은 A 씨의 혐의 가운데 일부는 임시보호 명령을 통지 받기 전에 벌어진 일이라며 기존 유죄 선고를 무죄로 바꾸기도 했다. 이에 따라 1심 판결은 파기됐지만 형량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동일하게 선고됐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피해자의 양해 내지 승낙,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처벌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