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사업에 포함하는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 규정을 확정했다. 규정안은 EU 의회에서 4개월간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며 승인될 경우 오는 2023년 1월부터 시행된다.
2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발전을 천연가스와 함께 녹색으로 분류한 택소노미 규정안을 확정·발의했다고 밝혔다. 머레이드 맥기니스 EU 금융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은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가 불완전할 수 있지만 기후 중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가는 진정한 해결책”이라며 “녹색 분류에 포함되기 위한 조건을 엄격하게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탄소 중립 시대를 맞아 세계 주요국들의 원자력발전 회귀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원전은 탄소 배출이 0에 가깝고 신재생발전의 약점인 간헐성을 보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국제 정세 불안으로 천연가스 수급에 지장이 생긴 점 역시 원전 회귀 움직임에 불을 붙이고 있다. EU뿐 아니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행정명령에 무공해 전력으로 원전을 명시했고 중국도 2035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을 150기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30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지침서에서 원자력발전은 녹색분류에서 제외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조건부로 포함한 바 있다. 환경부는 발표 당시 “국제 동향과 국내 상황을 감안해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원전이 포함된 EU 택소노미가 확정·발의된 데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EU 의회에서 승인될 때까지 4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의회에서 승인된 후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규정안 승인이 EU 의회에서 부결되려면 27개 EU 회원국 중 20개국이 반대하거나 EU 의회에서 353명 이상이 반대해야 한다. 독일 dpa통신은 “몇몇 회원국의 반대에도 부결 기준치가 매우 높은만큼 택소노미가 그대로 시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부결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도 정부가 EU 의회 논의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겠다며 시간을 끄는 배경에는 올 3월 실시하는 대선이 있다고 보고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탈원전 정책’의 운명도 함께 정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환경부의 행보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대선 이후 국제 기준에 맞춰 원전을 친환경 전원에 포함하도록 K택소노미를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