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3가 좁디좁은 골목. 인쇄소를 연상케 하는 오래된 문이 보인다. 간판은 없고 유리에 테이프로 ‘커피, 와인, 맥주, 소주(는) 없음’이라는 문구만 써 있다. 2층에 올라가자 나타나는 레트로 감성 물씬 풍기는 공간. 수북이 쌓인 메모와 와인 병, 와인 잔들은 이곳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힙 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와인 바 ‘십분의일’임을 알려 준다.
고객들에게는 평범한 술집처럼 보이지만 사실 십분의일은 특별한 곳이다. 이곳은 30대 젊은이들이 설립한 공동체 ‘청년 아루파’의 첫 번째 가게다. 회사원 또는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친구 10명(현재는 8명)이 모여 ‘돈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끼리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출자금은 각자 벌고 있는 수입에서 10%씩 떼어 내 마련했다. 십분의일이라는 가게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단 최소 5만 원(나중에는 10만 원)에서 최대 40만 원이라는 범위를 뒀다. 서로에게 부담을 갖지 말자는 취지다.
수익 배분 방식은 특히 남다르다. 투자액이 크면 지분이 많고 수익도 그에 따라 많이 가져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이러한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얼마를 투자했든 수익은 인원수대로 똑같이 나눈다. 이현우(35) 십분의일 대표는 “운영 수익의 50%는 적립하고 10%는 가게를 운영하는 대표에게 부여한다”며 “나머지 40%는 대표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출자액과 상관없이 똑같이 나눈다”고 설명했다.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거창한 이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자신들끼리 해 보고 싶은 것을 맘껏 하고 싶었다고 한다. “빵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빵집을 내고 요리를 원하는 사람은 요리사가 될 수 있게 도와주자는 것이었죠. 승자 독식이 판치는 험난한 사회지만 친구들끼리만큼은 함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습니다.”
총대는 2년간 방송사 PD를 하다 퇴직한 이 대표가 멨다. 나머지는 회사를 다니면서 지원하기로 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는 순항을 거듭했다. 지난 2016년 오픈하자마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반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그는 “때마침 다양한 사람들이 터를 잡으면서 을지로3가가 주목을 받았고 수익도 덩달아 뛰었다”며 “지금은 노량진·제주도 등 총 6곳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십분의일을 제외하고 대부분 고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종일 가게에 매달려 있는 대표와 그렇지 않은 친구들 사이에는 분명 골이 존재한다. 매달 두 번째 일요일 모두 모여 가게 운영에 대한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고는 있지만 쉽사리 해법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는 “매일 가게에 나와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놀이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며 “가구 하나 사는 것부터 운영 방식까지 많은 것을 두고 싸웠다”고 덧붙였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못 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대표는 “초기 자본을 모은 것도, 동네를 알게 된 것도, 십분의일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한 것도 혼자서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같이하는 것에 분명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잘되는 경우가 아니라 안되는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는 충고가 돌아왔다. “창업은 1년짜리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취업을 할 때도 몇 년을 준비하는 게 요즘 아닙니까. 사업을 한다는 것은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입니다. 잘되는 장사를 보면 안 됩니다. 어려움을 겪는 곳, 망한 곳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철저한 준비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게 이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