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주요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5월 10일 취임사다. 5년이 지난 지금, 문 대통령은 약속을 하나라도 지켰을까.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11개월간 청와대를 출입한 기자조차 문 대통령과 직접 말을 섞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운도 없었지만 기회 자체가 극히 적었다. 지난해에는 방역이 빌미가 돼 주요 참모들의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벌써 8개월가량 춘추관에 발길을 끊었다. 지난해 2월 기자실 첫 방문 때 “앞으로 자주 오겠다”던 그의 장담은 그저 허언(虛言)이었다.
청와대는 심지어 문 대통령에게 질문할 마지막 기회였던 신년 기자회견도 돌연 취소했다. 오미크론 대응이 이유였지만 1월 23일~2월 3일 대통령의 공개 일정은 26일 내부 회의와 30일 현장 방문이 전부였다. 중동 순방 기간 확진자가 발생한 사실은 동행 기자들도 정확히 몰랐다.
문 대통령의 소통 실적은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처참한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껏 국민과의 대화를 2번, 국내 기자회견을 7번 가졌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150여 차례)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20여 차례)보다도 기자회견·브리핑 수가 적다. 4년만에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5차례)과 비슷하다. 야당 시절 박 전 대통령을 최전선에서 비판했음에도 말이다.
대통령 지시 상당수는 ‘서면 브리핑’ 속에 있다. 기자들은 친정부 성향 방송이나 페이스북에서 비서관들이 쏟는 말로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한다.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 기저효과로 ‘불통(不通)’에 이미 익숙해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9년째 낯가리는 대통령을 겪은 국민들은 차기 지도자에 대해서도 기대를 접은 듯하다. 서울경제·한국선거학회가 지난달 11~13일 조사한 결과 ‘국민과 소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60.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50.7%에 달했다. 가족 의혹 변명과 포퓰리즘 정책, 광화문 집무실 공약 따위를 그대로 믿을 국민은 많지 않다.
대통령의 주 역할는 국정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국민들을 끊임없이 설득·포용하는 일이다. 청산해야 할 적폐는 반대세력이 아니라 불통 그 자체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유도, 5년 만에 정권 교체 요구가 늘어난 이유도 모두 지도자의 폐쇄성에 있다. 소통을 귀찮아 하는 대통령은 왕과 다를 바 없다. 신비주의는 충성 지지자들에게만 통한다. 차기 대통령은 국민의 갈증에 반드시 호응할 준비가 된 사람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