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말이 있다. 기존에 구축된 거대한 정보와 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가상자산 산업에 딱 들어맞는 얘기다. 이 산업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져 정점에 이르렀고 지난 2012년에는 가치가 0이었던 것이 지금은 수조 달러를 인정받는다. 전 세계 많은 기관투자가가 가상자산 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전체 시장 규모는 2000조 원에 육박한다.
그런데 만약 이 기관투자가들이 다시 2013년으로 돌아가면 가상자산에 투자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일례로 당시 비트코인은 이제 막 나온 신상 화폐에 불과했으니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이나 그때나 비트코인 그 자체는 크게 변한 게 없지만 신뢰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후 비트코인은 12년간의 트랙레코드를 쌓았고, 몇 번의 사이클을 거치며 성숙해졌고, 가장 앞선 암호화폐가 될 수 있었다. 특히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정받으며 대체자산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안정성이다. 비트코인이 2100만 개라는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규칙과 프로토콜을 바꾸지 않으면서 가치를 유지할 능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트코인을 필두로 하는 가상자산이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보안 시스템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상의 데이터 보안 기술은 계속해서 우리를 실망시켰다. 많은 전문가가 최고의 보안 기술을 선보이지만 해킹을 당했다는 뉴스는 매일 나온다. 가상자산은 결국 데이터다. 온라인 상태에서 아무리 철저하게 보호해도 60억 명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불안 요소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시장을 일찍이 개척한 선진국들은 오프라인에서 보관하는 수탁 시스템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가상자산 수탁업 인허가 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통 금융사들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안심하고 가상자산을 채택하고 수용할 수 있는 안전한 인프라가 마련된 셈이다. 일본 또한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고객 자산의 95%를 콜드 스토리지에 보관하도록 의무화해 모든 기업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다.
한국은 가상자산 거래 규모 3위인 가상자산 분야의 선진국이다. 제도적 인프라도 점차 견고해지고 있으며 커스터디 구축이나 거래소의 역할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다. 다만 지금 필요한 규제는 시장을 제한하고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상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가상자산 수탁 기업뿐만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해 모든 규제 당국과 투자자들도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