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미쳤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상상을 뛰어넘는 이상한 판정이 잇따르면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올림픽 정체성을 의심 받는 최악의 잔치로 가라앉고 있다.
지난 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선에서 황대헌(강원도청)·이준서(한국체대)를 떨어뜨린 황당한 실격 판정이 우리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해외 언론들도 판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전 경기의 최소 4분의 1에 비디오 판독이 개입됐다”며 “베이징 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은 비디오 판독 이전의 결과가 무의미한 종목이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로이터통신도 “세계기록 보유자인 황대헌은 ‘접촉을 유발하는 늦은 레인 변경(illegal late pass causing contact)’으로 실격됐는데 자세한 이유는 나오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야후스포츠 캐나다는 페널티 덕을 받은 중국의 두 번째 쇼트트랙 금메달이 혼돈과 더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쇼트트랙에서 나온 3개의 금메달 중 중국이 2개를 가져갔는데 둘 다 경쟁팀의 페널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중국 여자 쇼트트랙의 레전드이자 반칙왕으로 악명 높았던 왕멍조차 TV 해설 중 황대헌의 실격 판정에 “이건 정말 의외”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비디오 판독은 오심 논란을 없애기 위해 20년 전 도입된 제도인데 중국에서는 오히려 공정성을 해치고 종목의 존재 가치를 위협하는 도구로 전락한 모습이다. 중국 선수의 레이스에 방해가 됐다고 보는 장면에만 유독 판독을 엄격히 적용하는 등 편파 판정의 색이 짙다. 남자 1000m 결선 막판에 중국의 런쯔웨이가 류 사올린 샨도르(헝가리)를 잡아당기는 장면이 있었는데도 영국 출신 심판장인 피터 워스 등은 이 장면에 대해서는 판독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결국 런쯔웨이가 우승해 혼성계주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중국은 9월 아시안게임(항저우), 내년 6월 아시안컵 축구까지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를 줄줄이 치를 예정이라 도 넘은 홈 텃세에 대한 우려가 동계 스포츠 이외 종목으로도 번지고 있다.
한편 대한체육회는 쇼트트랙에서 나온 중국의 텃세 판정에 대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직접 항의하는 동시에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겠다고 8일 밝혔다. 한국 선수단장을 맡은 윤홍근 제너시스비비큐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며 “다시는 국제 빙상계와 스포츠계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한국의 판정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주심이 비디오 심판과 함께 사건을 다시 한 번 검토했고 자신의 최종 결정을 고수했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우리나라가 올림픽 기간에 CAS까지 가는 것은 2004 아테네 하계 올림픽 당시 체조 양태영 사건 이후 18년 만이다. 당시 가산점을 적게 준 심판의 오심을 인정받기는 했으나 판정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도 판정 번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적극적인 항의와 재발 방지 촉구로 상심한 선수단에 사기 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한국 쇼트트랙은 9일 황대헌·이준서·박장혁(스포츠토토)이 출전하는 남자 1500m에서 첫 메달에 다시 도전한다. 황대헌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말을 옮기며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벽을 만나면 돌아가거나 포기하지 마라. 어떻게 그 벽을 오를지 해결책을 찾아보고 그 벽을 이겨내라’는 내용이다. 1000m 준준결선에서 중국의 우다징과 부딪쳐 왼손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은 박장혁은 11바늘을 꿰맨 뒤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