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정부가 3T(검사·추적·치료)를 사실상 포기함에 따라 QR코드·방역패스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 확진자와 함께 식사를 하고도 격리되지 않고 역학조사 내용마저 스스로 기입하는 상황에서 접종자·미접종자를 구분하는 방역패스(접종 증명·음성 확인)는 더 이상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거리 두기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자영업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적 모임 수와 영업 시간을 제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방역 당국은 지난 7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직접 설문조사 URL 주소에 접속해 동선과 접촉자 등을 기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날부터는 격리 체계도 완화해 확진자 동거인 중 미접종자, 요양병원 등 감염취약시설의 밀접 접촉자 중 미접종자만 격리하도록 했다. 확진자와 식사를 하거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어도 밀접 접촉자로 코로나19 검사가 요구되지 않는다. 더욱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확진자 동선 파악을 전면 중단해 코로나19 확진자 통제도 사실상 종료됐다. 정부가 고위험군 확진자 관리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방역 체계를 전환하면서 일반 확진자 관리는 스스로에게 맡겨진 셈이다.
이에 따라 식당·카페 등에 적용 중인 방역패스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확진자와 감염 의심자의 활동을 제재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방역패스는 백신 접종을 확인하는 것 이외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보건소에서 위치 추적을 하지 않기로 한 이상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식당에서는 바로 옆 자리에 감염자가 앉아 식사를 할 수도 있다”면서 “방역패스가 미접종자를 보호하고 감염 확산을 막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효과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사적 모임 6인, 영업 시간 오후 9시 제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가 크다. 소상공인연합회는 “현재 방역 정책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라며 “언제까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옥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빠른 시일 내에 민간 자율에 맡기는 방역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지현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역시 “하루라도 빨리 상황이 호전되고 정상 영업을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태가 너무 장기화되다 보니 자영업자들은 거의 자포자기한 상황”이라면서 “오는 20일에는 방역 당국에서 약속한 대로 영업 제한을 풀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방역패스 폐지와 거리 두기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방역패스를 폐지하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고재영 질병관리청 대변인은 “접종 완료 여부는 코로나19 감염 시 위중증을 낮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다중이용시설 출입 시 방역패스를 통해 주의를 촉구하는 등 목적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검토를 거쳐 조만간 방역패스에 대한 후속 조치를 내놓을 방침이다. 박영준 중대본 역학조사환자관리팀 팀장은 “현재까지 전자출입명부(방역패스) 기능이 접촉자 추적 관리나 접종·음성 확인 두 가지였는데 접촉자 추적 관리 기능이 약화돼 후속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방역패스를 놓고 고심하는 사이 등교를 앞둔 청소년들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 기간도 도래했다. 정부는 12~18세 청소년 방역패스를 오는 3월 한 달 계도 기간을 거쳐 4월 1일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함께하는사교육연합 등 학부모 단체는 이날 “청소년은 치명률이 0%이고 오미크론 자체 치명률은 0.16%로 독감보다 아주 경미하게 높은 수준인데 정부는 국가 방역이라는 목적으로 치명률이 현저히 낮거나 전혀 없는 국민에게도 접종을 강요하고 있다”며 청소년 방역패스 시행 정지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