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단독] '오일' 다음 '배터리'…사우디 국부펀드, SK온에 1조+α 베팅

넥스트 오일로 'K-배터리' 선정해 관심

장기 투자에 조건도 좋아 SK도 긍정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사우디 스마트 혁신 포럼에 앞서 야시르 오스만 알루마이얀 아람코 회장 겸 사우디 국부펀드(PIF) 총재를 접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사우디 스마트 혁신 포럼에 앞서 야시르 오스만 알루마이얀 아람코 회장 겸 사우디 국부펀드(PIF) 총재를 접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 PIF(Public Investment Fund)가 SK이노베이션(096770)의 자회사로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SK(034730)온에 1조 원 이상의 투자를 추진한다. PIF는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이며 세계 최대 기업인 아람코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전략적 투자처로 ‘K배터리’를 선정한 셈이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온의 상장(IPO) 전 투자 유치를 주관하고 있는 JP모건과 도이치증권이 실시한 예비입찰(LOI, 투자의향서 제출)에 칼라일·KKR 등 다수의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뿐 아니라 PIF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 자산 규모가 4300억 달러(약 515조 원)에 달해 세계 9위 국부펀드인 PIF는 SK온에 최소 1조 원 이상의 투자를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K 측은 이번 투자 유치로 3조~4조 원가량의 실탄을 확보해 글로벌 배터리 생산 체제 구축에 투입할 방침이다. 투자가들은 SK온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신주를 받아 10% 안팎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IB 업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PIF는 사우디의 ‘탈석유 경제’를 이끄는 국부펀드로 SK온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측면에서도 적합한 투자처로 여겨져 자금 투입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온의 투자유치 예비입찰에는 칼라일과 KKR·TPG 등 글로벌 PEF들도 참여한 가운데 회사 측은 이르면 다음 주 투자적격후보(쇼트리스트)를 선정하고 실사 기회를 부여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사모펀드보다 장기적 투자가로서 국부펀드가 더 적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PIF의 투자 계획에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SK 측이 투자 유치 과정에서 SK온의 기업가치를 최대 35조 원 이상으로 전망했지만 해외 사모펀드들은 20조~30조 원가량을 제시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도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이 당분간 SK온의 IPO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아 상장을 통해 4~5년 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에는 불리한 국면이다. 최태원 회장 등 SK 고위층은 교보생명 사례 때문에 투자 유치 기업의 상장을 일정 기간 내에 마치지 못하면 지분을 되사야 하는 ‘풋옵션’ 조건 등에 부정적이고 사우디와 전략적 투자 관계를 맺는 데는 호의적이어서 PIF가 SK온의 주요 주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 물적 분할 후 상장(IPO)에 대한 규제 문턱이 높아지면서 전기차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의 투자 유치에 장기 투자가 가능한 국부펀드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시설을 미국·유럽 등으로 확대하고 있는 SK온은 막대한 투자 실탄이 지속적으로 필요한데 상당 기간 IPO가 쉽지 않아 사모펀드보다 안정적인 국부펀드의 투자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탈석유’에 나선 사우디가 국내 건설 및 정유업체 투자에서 최근 게임으로 투자처를 늘린 데 이어 ‘K배터리’를 협력 분야로 점찍은 것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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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의 한 관계자는 “PIF는 넉넉한 실탄과 적극적인 투자 의사를 갖고 있는 데다 사모펀드에 비해 투자 조건도 까다롭지 않아 SK 고위층이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실적 발표에서 SK온 지분 100%를 보유한 SK이노베이션이 “SK온 상장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못박으면서 PIF가 투자 파트너로 주목받고 있다. SK온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서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4위에 올라 있는데 글로벌 톱3에 올라서려면 이번 투자 유치 이외에도 계속 대규모 투자 실탄을 확보해야 한다. SK온은 이번에 유치할 자금은 미국 내 배터리 공장 신·증설에 투입할 예정인데 앞으로도 중국 옌청·헝가리 코마롬 등에 설립할 공장들을 고려하면 총 투자금만 30조 원에 이른다.

SK이노베이션이 상당 기간 SK온에 대해 상장 의사가 없다고 밝힌 상황에서 지속적인 투자 자금 유치가 어느 때보다 긴요해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포진한 PIF는 SK온의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운용 자산이 4300억 달러(515조 원)인 PIF는 세계 최대기업인 아람코의 지분 매각 대금 등이 들어오면서 오는 2025년 말까지 1조 700억 달러(1283조 원)로 덩치를 키울 계획을 갖고 있다. 사우디가 ‘탈석유’ 경제를 지향하면서 친환경 등을 내세우고 있어 SK온의 전기차 배터리는 어떤 산업보다 적합하다는 측면도 있다.

SK 입장에서도 PIF가 국내에서 장기 투자자로 신뢰를 쌓아온 ‘투자 레코드’가 확실해 협력 가능성을 다양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PIF는 지난 2015~2016년에 걸쳐 포스코건설의 지분 38%를 총 1조 2391억 원에 인수한 후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건설업의 업황이 그간 적잖은 부침을 겪었지만 PIF는 포스코건설 이사회에 비용 절감을 요구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요구 사항을 제시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PIF는 포스코건설과 알루미늄 개발 합작사를 세운 데 이어 올해 1월 포스코그룹과 사우디에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수소 생산 사업을 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협력을 확대해 왔다.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우디의 PIF가 이달 초 넥슨에 1조 원을 투자한 데 이어 엔씨소프트 지분 6.69%를 사들였는데 ‘SK온’까지 투자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와 전략적 투자 관계가 한층 깊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임세원 기자·최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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