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비철금속이 채굴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시대부터였다. 로마가 영국을 점령해 구리·주석 등의 광석을 침탈해간 것이 계기였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에는 원자재 거래 상인들이 카페에 모여 광석을 거래했다. 당시 매도자가 바닥에 톱밥으로 원을 그리고 ‘체인지(Change·팔겠다)’라고 밝히면 매수자가 원 안에 들어가 가격을 제시하고 ‘아웃크라이(Outcry·사겠다)’를 외쳐 거래가 성사됐다. 지금도 이어지는 ‘링(Ring)’ 거래 방식이다. 산업혁명으로 비철금속 수요가 급증하자 영국이 1877년에 아예 거래소를 설립했다. ‘런던금속거래소(London Metal Exchange)’는 이렇게 태어났다.
LME는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와 함께 원자재 시장의 양대 산맥이다. CBOT에서 농산물이, LME에서는 동·아연·납·주석·알루미늄·니켈 등 비철금속이 주로 거래된다. 현물과 선물(先物)이 모두 거래되지만 선물 비중이 훨씬 크다. 원자재는 산지와 수요지가 멀어 장래의 일정한 시기에 현물과 대금을 바꾸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LME의 선물이 세계 비철금속 선물의 80%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세계 비철금속 거래 가격의 기준이 되는 이유다. LME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12개국의 40여 개 지역에 창고를 두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알루미늄 가격이 최근 톤당 3200달러를 넘어 13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의 대형 알루미늄 생산업체 루살이 제재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우려가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세계 주요 상품거래소의 구리 재고는 40만 톤으로 1주일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공급 부족이 예상되면서 현물 가격이 급등해 선물 가격보다 높아지는 백워데이션이 원자재 상품 시장에서 번지고 있다. 실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원자재 가격의 폭등은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긴축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말로만 ‘공급망 위기 대응’을 외칠 게 아니라 범정부 차원의 컨틴전시플랜을 세워 ‘회색코뿔소(예상 가능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 출현에 제대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