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공연이 더 재밌어질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격렬하게 팔을 휘젓다가 껑충껑충 뛰어오른다. 연주자 수십 명을 이끌고 선율을 빚는 지휘자에게 무대는 숨 가쁜 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온몸과 신경을 총동원하는 시간이기에 몸과 마음에 들어맞는 복장은 필수다. 지휘자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감동의 연주가 되어 돌아온다. 옷이 비로소 날개가 되는 순간이다.
검은 정장 재킷에 하얀 셔츠와 베스트(조끼), 그리고 나비넥타이. 일명 ‘펭귄 수트’로 불리는 연미복은 지휘 패션의 정석이다. 뒷부분 원단이 길어서 격렬한 몸 동작으로 셔츠가 튀어나와도 보이지 않는다. 리카르도 무티, 요엘 레비가 대표적인 연미복 파(派)다. 동작이 큰 몇몇 지휘자들은 바지와 상의를 고정하는 서스펜더(멜빵)를 착용한다. 최근 취임 공연에서 연미복을 입은 다비트 라일란트 코리안심포니 음악감독은 “연미복은 재킷 앞이 닫혀있지 않아 움직임이 자유롭다”며 “실용적이고 편한 옷”이라고 설명했다.
넥타이 없이 옷깃이 목을 둘러싸는 차이나 칼라도 있다. 연미복 일색에 변화를 시도한 이는 레너드 번스타인이었다. 1958년 뉴욕필 음악감독이던 그는 정기공연보다 가벼운 성격의 목요 콘서트에서 차이나 칼라 유니폼을 도입했다. 그러나 ‘벨보이 같다’는 단원들의 거센 반발로 이 ‘이색 패션’은 3개월 만에 무대에서 사라졌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사이먼 래틀, 얍 판 츠베덴 등 거장들이 이 차림을 자주 선보인다.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도 즐겨 입는다.
남다른 의상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지휘자들도 있다. 야닉 네제 세갱은 2017년 내한 당시 도트 무늬 정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그는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남자 단원 복장을 연미복과 흰 넥타이에서 캐주얼한 검은 수트·셔츠로 바꿨다. 지난해 서울시향과 공연한 달리아 스타세브스카는 화려한 패턴의 블라우스를, 올해 서울시향 신년음악회에 선 성시연은 광택 나는 깃으로 포인트를 준 연미복 풍의 옷을 입었다.
그래도 핵심은 편안함이다. 성시연은 “동작을 흡수할 신축성과 유연함을 갖췄는지 가장 먼저 살핀다”고 한다. 또 조명 탓에 쉽게 땀이 나기에 “안감을 덧대지 않은 원단”과 “동작할 때 따라 올라오지 않는 재질”을 선택한다. 격식과 편안함을 고려해 턱시도를 자주 입는다는 라일란트는 “연미복은 훌륭하지만, 원단이 두꺼워 긴 프로그램 때는 더위로 피곤해진다”며 “교향악 공연에서는 꽉 끼지 않는 턱시도, 지휘자가 눈에 덜 띄는 오페라 연주 때는 우아하고 가벼운 차이나 칼라의 실크 셔츠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올해는 엘 레비와 얍 판 츠베덴, 사이먼 래틀, 야닉 네제 세갱이 한국에 온다. 이들이 어떤 날개를 달고 포디움에 오를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