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물가 안정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다각적인 대책을 적기에 시행해달라”고 주문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이 지난 7개월간 11번 지시를 내릴 만큼 물가에 신경을 쏟으며 경제수석이 ‘계란수석’으로 불릴 정도로 물가 보고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러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확대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돈을 더 풀라고 한국은행에 주문했다. “한은이 최근 2조 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 조치를 취했는데 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향후 대응도 협의해야 한다”며 추가 국채 매입을 요구했다.
한은이 정부로부터 직접 국채를 사거나 단순매입하면 통화량이 증가하고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통화량 증가는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 그런데 물가 안정이 설립 목적인 한은도 국채 매입에 동조한다. 기재부와 회의한 뒤 한은 부총재는 시장 상황에 맞춰 국고채를 추가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물가 안정 목표를 2%로 잡은 한은이 앞으로 상당 기간 이를 벗어난 3%대 소비자물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스스로 전망하면서도 돈을 더 푼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초미의 과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들의 살림이 장바구니 물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고물가에 맞서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고 했다. 그 중 중요한 수단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양적 팽창을 오는 3월까지 종료하고 기준금리를 인상한다고 예고했다. 이에 더해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 원칙을 발표했는데 이는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내다 판다는 뜻이다. 한결같이 통화량을 줄이려는 대책이다.
한은은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돈줄을 조이다가 이번에 국채 매입 확대라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대조를 이룬다. 정부와 한은이 표방한 이유는 국채금리 급등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나 한은의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형성돼야 금융시장이 안정되며 일관성 없는 정책은 불안을 확산시킨다. 실제로 정부와 한은의 국채 추가 단순매입 방침 발표 이후 국채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반대로 올라갔다.
애초에 문제를 꼬이게 한 원인은 정치권에서 만들었다. 올해 예산이 확정돼 미처 집행되기도 전에 적자 국채를 재원으로 한 추경을 추진했다. 정부가 14조 원의 추경안을 내놓자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40조 원을 증액했는데 이는 적자 국채 발행액이 몇 배로 늘어난다는 의미다. 이렇게 돈을 풀면서도 뒤탈이 없다면 기적이다. 국채 소화에 대한 우려로 국채금리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 불안 요소까지 겹쳐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커졌다.
지금이라도 추경 심의를 미루는 게 최선이다. 국가재정법 규정대로 4월 결산 완료 이후 확정된 세계잉여금을 재원으로 추경을 짜면 적자 국채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2월 국회에서 처리한다면 정부안의 적자 규모를 넘기지 말고 올해 적자 추경이 더는 없도록 못 박아야 한다.
정부와 한은이 통화량을 늘려가며 국채를 매입해 정치권의 적자 추경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 올해의 세계적 추세에 맞춰 재정 적자를 줄이고 통화를 긴축하는 것이 경제 원리에도 맞는 정책이다.
공공요금 인상 연기 등 정부의 직접적 물가 통제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원자재 구입처를 다변화해 공급망 차질을 줄이는 것이 실질적 대책이다. 한국의 강점인 정보기술(IT)을 활용한 물류 플랫폼을 확대하고 철도·해운·항공 등 물류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일도 물가 안정에 필요한 근본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