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 편지를 기점으로 성희롱, 살해 협박, 신상 털이로 고통받은 학생이 있었다. 최근 한 프로배구 선수와 인터넷 방송인 사망 소식도 잇따라 전해졌다. 모든 사건 시작과 원인은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은 일상이 됐다. 지하철에서도, 잠들기 전까지도 휴대폰은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때론 누군가의 팬으로, 때론 누군가의 친구로, 하루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다양한 신분이 된다. 이러한 인터넷의 익명성은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생각을 움직이고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적은 댓글이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꽤나 가까운 미래를 예측했다. 해당 작품 개봉 이전에도 디지털 범죄가 있었지만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들이 더욱 많았다. '소셜포비아'는 마치 실화를 토대로 한 듯 익숙하고 또 불편하다.
한 군인의 자살 소식에 남긴 악성 댓글로 민하영은 이슈에 오른다. 인기 BJ 양게(류준열)는 "정의를 위해서"라며 함께 하영에게 찾아가 사과를 받아낼 ‘현피(현실에서 싸운다는 뜻의 은어)’ 원정대를 모집하고, 경찰 지망생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은 현피 원정대에 참여한다. 하지만 현피 원정대가 집을 찾아갔을 때 하영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 자연스레 비난의 화살은 이들에게 돌아간다.
억울했던 현피 원정대는 하영이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주장하며 진범을 찾기 위해 '민진사(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라는 인터넷 카페까지 개설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영과 키보드 배틀을 벌였던 장세민을 범인으로 의심해 직접 찾아가고, 하영의 모교에 찾아가기도 하며 이들은 나름의 수사를 벌인다. 그러던 중 현피 원정대는 용민이 과거에 '도더리'라는 닉네임으로 SNS에서 하영과 다퉜던 사실을 알게 되고, 용민을 범인으로 몰기 시작한다. 마녀사냥의 타깃은 용민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SNS 속 '팔로워'라는 단어는 인터넷 속 우리들을 잘 나타낸다.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뜻대로 사람들은 문장 하나에도 쉽게 생각을 움직인다.
현피 원정대는 범인을 찾기 위한 정보를 주로 인터넷 카페를 통해 얻는다. 알 수 없는 사람이 제공한 정보들을 어떻게 바로 믿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실상 이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정보를 보이는 그대로 믿는 이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인 만큼 이미 검증됐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보를 신뢰하고 유포한다.
영화 속 네티즌들은 악플러 하영을 비난했지만, 하영의 죽음과 동시에 현피 원정대에게 비난의 화살은 돌아간다. 마지막엔 현피 원정대의 선동으로 용민에게 모든 비난이 모인다. 약 100분 동안 영화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여론은 현실 반영을 꽤나 충실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잘못했을까. 하영도, 용민도 '피해자'라고 규정하기엔 과거 행적이 모순적이다. 이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타인에게 보냈던 비난의 화살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본인에게 돌아갔다. 인터넷에서 타인을 공격하는 것을 즐겨 하던 하영도 결국 무너졌고, 하영의 폭로로 무너져 이를 복수하려 했던 용민도 끝내 다시 대가를 치렀다.
BJ 양게가 처음에 말했던 '정의'는 무엇일까. 악플러의 신상을 털어 사과를 받겠다는 그들은 과연 정의로운 걸까. 사람들은 결국 본인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인터넷에는 아직도 민하영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영화 속 마지막 독백은 왠지 낯설지 않다.
사이버 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되지만 인터넷의 '익명성', '표현의 자유'라는 특성 때문에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소셜포비아' 속 사건은 영화가 개봉한지 약 7년이 지난 현시점에 오히려 더 익숙하다. 하영, 용민 그리고 현피 원정대는 지금도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다. 이제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시식평 - 이만한 디스토피아 영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