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54년 쇳물 인생, 시대를 담금질하다

[대한민국 명장을 찾아서]

◆'대한민국 주조 명장' 송장일 천종사 대표

14세부터 풀무질 시작 외길 걸어

이순신 동상·연대 독수리 상 등

그의 손 거친 작품만 최소 10만점

"제주도에 문화재 박물관 짓고파"


서울 광화문광장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들 때는 주물을 부었다. 연세대의 상징 독수리상, 잠실 올림픽경기장 성화 주물, 군자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소파 방정환 동상에도 손때를 묻혔다.

청동으로 시대의 상징을 표현한 국내 최고의 주물 장인 송장일(68) 천종사 대표. 지난 2010년 대한민국 주조 명장에 이름을 올린 송 대표는 14세 때부터 풀무질을 시작해 54년간 쇳물 인생을 걸어왔다.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은 최소 10만 점 이상이다. 국내의 대형 주조물치고 그가 관여하지 않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재일거류민단장 김용환 지사 동상, 김해 경마장 마상, 후광 포함 높이 27m 무게 130톤인 국내 최대의 청동 불상인 부산 홍법사 아미타 불상, 춘천 시민의종 등등이 모두 그의 작업실에서 나왔다. 송 대표는 “작은 불상까지 포함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며 “큰 것은 불상이 10점, 종은 50점을 훌쩍 넘는다”고 설명했다.

처음 접했던 것은 주물이 아니라 조각이었다. 조각을 하려면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집안이 기울면서 2년제 재건중학교를 나왔던 그에게 이 꿈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꿈을 접었습니다. 대학을 못 나올 바에는 차라리 주물 공장으로 가자고 생각했죠. 서울 뚝섬에서 6년간 주물을 부으며 기술을 배웠습니다. 전통 주물을 다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죠.”

송장일 천종사 대표가 지난 1979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한국 정부에서 기념 선물로 건넸던 국보 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모조품 원판을 바라보고 있다.송장일 천종사 대표가 지난 1979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한국 정부에서 기념 선물로 건넸던 국보 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모조품 원판을 바라보고 있다.





일찍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8년 24세에 불과했던 송 대표에게 한 가지 특별한 주문이 들어왔다. 의뢰인은 국무총리실. 방한 예정인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로 전달할 반가사유상 모조품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요구 작품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모작. 조각에만 6개월, 완성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는 “완성된 작품의 무게가 80㎏에 달했지만 총리실까지 직접 짊어지고 찾아가 전달했다”며 “최규하 당시 총리가 고맙다며 차 한 잔 주더라”고 회고했다. 그의 열정을 담은 ‘한국의 미소’ 모작은 1년 후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카터 대통령의 짐 가방에 실려 미국 백악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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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일 대표가 작품의 제작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만든 스티로폼 모형.송장일 대표가 작품의 제작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만든 스티로폼 모형.


겉으로 보기에 단순할 것 같지만 주물 작업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우선 원하는 형태를 데생으로 표현한 후 실물과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 여기에 석고나 스티로폼으로 조각을 하고 주물 거푸집을 만든다. 형태가 나오면 손질을 한 다음 도금 작업을 한 뒤 얼굴을 그리고 마무리한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일정이다. 송 대표는 “지리산 사찰에 세울 예정인 청동 해수관세음보살상은 완성까지 3년 정도 예상한다”며 “그래도 최근 3D 프린터 같은 신기술이 등장해 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주물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1.5m 이하의 작은 작품은 동을 녹인 물을 주물 틀에 부어 한 번에 만든다. 이순신 동상처럼 대형 주조물은 사정이 다르다. 2~3m씩 부분 부분 나눠 만든 후 나중에 이를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종은 동과 주석을 합치고 그 안에 금과 은·인 등을 첨가한 후 한 번에 만든다. 용접을 하면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만들 수도 없다. 작업실과 외부와의 온도 차이 때문에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는 탓이다. 송 대표는 “종은 두드렸을 때 2~3분 정도 소리가 은은하게 이어져야 한다”며 “강원대 분석 결과 춘천 시민의종이 가장 선명하고 긴 여음을 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부연했다.

그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다. 제주도에 전국 주요 문화재를 복제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짓는 일이다. 부지도 확보된 상태다. 문제는 전제 조건. 제주도는 박물관을 지으려면 무형문화재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송 대표가 무형문화재 지정에 총력전을 펴는 이유다. 그는 “전국에 흩어진 국보나 보물을 한 공간에 모아 전시한다면 관람객들이 힘들게 방방곡곡 돌아다니지 않아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의 여생은 이러한 꿈을 완성하는 데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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