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데…대선판 "R&D혁신""우주청""탄소제로" 외침만

◆대선 과학기술 공약 분석해보니

李 "과기부총리 만들어 예산권"

尹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 신설"

安·沈도 컨트롤타워 개혁 약속

연구 자율성 강화 등 쏟아냈지만

현실적 로드맵 빠져 뜬구름 그쳐

과기 어젠다 '구체화' 작업 필요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 전쟁, 탄소 중립, 감염병 대처 등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3월 9일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으나 화두로 떠오른 적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주요 후보들이 과학기술계와 머리를 맞대고 논쟁하고 정책을 가다듬는 기회도 없었다.

물론 주요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국정 의사결정에서 과학기술을 우선시하겠다”며 공약을 내놓았으나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평이다. 과학기술계는 “문재인 정부가 과학기술 혁신을 위해 나름 노력했으나 과학기술 주요 자리에 사람을 협소하게 쓴 데다 연구 현장의 자율성·독립성 측면에서도 미흡했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우선 과학기술 공약 중 차이가 나는 것은 리더십 확보를 위한 컨트롤타워 정비를 들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과학기술 부총리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대통령 직속 민관 합동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신설을 각각 내세운다.

이 후보는 과학기술을 국정의 중심에 놓겠다는 의지하에 과기혁신부총리를 둬 기획과 집행권을 넘어 예산 권한까지 대폭 위임하겠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인인 안 후보는 과기부총리에 예산 권한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 과기보좌관을 수석비서관으로 격상하고 대통령 직속 국가미래전략위원회를 둬 대통령이 되면 매번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모두 5대 강국(G5)으로의 부상을 역설한다. 이 후보는 인공지능·양자기술·우주항공·바이오헬스 등 전략 기술 주권을 확보해 대한민국을 세계 5대 과학기술 강국으로, 안 후보는 ‘5가지 초격차 과학기술’을 통해 ‘5개의 글로벌 대기업’을 만들어 ‘5대 경제 강국’에 진입하겠다는 비전을 역설한다. 심 후보도 기획재정부가 상원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며 과기부총리 신설을 힘줘 말한다.



앞서 과기부총리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이 겸직하는 식으로 처음 신설하고 현 정부처럼 과기부 내 과학기술혁신본부도 설치했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됐다. 오명·김우식 두 사람이 과기부총리를 역임했으나 당시 과기부총리는 과학기술 예산권을 갖지 못했다. 김우식 전 과기부총리(KAIST 이사장)는 “부처 간에 칸막이가 높고 장관끼리도 소통이 잘 안 돼 융합이 잘 안 되고 중복 투자가 많다”며 “과기부총리로 격상돼 기획 역량이 커지고 예산권까지 갖고 강하게 실행에 옮기게 되면 이런 문제가 적잖게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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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윤 후보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을 강조하며 대통령 직속 민관 합동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강조한다. 특히 정치와 과학의 분리를 강조하며 과학기술 전문가를 최고위직에 쓰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과기자문회의)와 역할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과기자문회의는 분야별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과학기술 중장기 정책 등을 대통령에게 자문한다. 염한웅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은 올 초 “자문회의에 의장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우가 적었고 정책 자문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기후위기, 탄소 중립 정책과 관련해서도 후보들 간 견해차가 크다. 이 후보는 “기후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만들겠다”며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함께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등 연구 확대를 제시한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감원전 정책으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반면 윤 후보는 “탄소 중립의 로드맵과 시기별 감축 목표는 과학에 의해서 결정이 돼야 한다”며 탈원전 정책에서 탈피해 원전 강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정치를 과학기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나쁜 예로 꼽았다. 안 후보는 “탄소 중립을 위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믹스는 필수”라며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 육성 의지를 피력했다. 심 후보는 “기후위기를 위기로 인식한 첫 기후대통령이 되겠다”며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오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 50% 감축 법제화를 제시했다.

박상욱 서울대 교수는 “현재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감축 목표 40%를 과연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후보들의 고민이 부족하다”며 “이 후보는 재생에너지에 대해 설비용량 위주의 목표를 제시했으나 간헐성과 환경 파괴 문제는 고민이 필요하다. 원전을 계속하겠다는 윤 후보와 안 후보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세대 성장 동력 확충을 하기 위한 우주정책의 경우에도 우주 컨트롤타워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이 후보는 청와대에 우주전략본부를 둬 범부처를 아우르며 우주강국의 꿈을 이루겠다는 방침이고 윤 후보와 안 후보는 항공우주청을 신설해 효율적인 우주정책을 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항공우주청의 소속과 위상·권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항공우주청의 설치 장소에 관해 윤 후보는 경남, 안 후보는 대전을 꼽아 차이가 있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강국을 위한 어젠다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새정부 초기에 컨트롤타워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주선진국 진입과 우주산업 육성·발전, 미래 먹거리 창출에 대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개발(R&D) 혁신에 대해서도 후보들 간 입장차가 엿보인다. 이 후보는 “어린이가 과학자를 꿈꾸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연구자 중심의 과학기술 연구 환경 조성, 청년·여성·해외 과학기술 인력 양성, 출연연의 PBS(연구원의 R&D과제수주경쟁제도) 개혁 등을 제시했다. 윤 후보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꼭 필요한 장기 연구 과제는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국가 장기연구사업제도 도입, 청년 도전 기회 확대, 여성 연구자를 위한 유연근무제 확대 등을 내놓았다. 안 후보는 “성실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성실 실패 인정 등 R&D 관리 시스템의 혁신 의지를 피력했다. 해외 우수 인재 유치와 과기 병역 특례 확대도 제시한다. 심 후보는 “과기정통부 장차관을 민간에서 임명하고 50%는 개방직으로 하겠다”며 파격적 변화를 예고했다. 윤지웅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 R&D에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데 후보들 중 대학의 R&D 혁신과 기술사업화, 기업가 정신 함양을 얘기하는 후보가 없다”며 “PBS 문제 등 출연연 혁신에 관한 공약도 두루뭉술하다”고 지적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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