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본업에서 베인앤컴퍼니에 밀린 JP모건…신세계 와이너리 인수 뒷이야기 들어보니 [친절한 IB씨]





요즘 인수합병 업계에 ‘와인’이라는 단어가 자주 오르내립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세계의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인수 소식이죠. 그 밖에도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자로 골프에 이어 와인이 거론되면서 관련된 투자 움직임이 들썩입니다. 오늘은 와인과 관련한 투자 뒷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신세계그룹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맡는 신세계프라퍼티는 지난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에 있는 쉐이퍼 빈야드 지분과 관련 부동산을 모두 2996억원에 인수하기로 계약했습니다. 신세계프라퍼티는 스타필드 운영을 위해 설립했지만, 최근에는 화성 테마파크, 동서울 상업지구 개발 등 그룹 내 개발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신세계 프라퍼티가 인수하기로 한 쉐이퍼 빈야드 전경입니다. 이런 와이너리 인수 과정에서도 현지 실사가 필요한데요. 담당자들이 인생 최고의 출장이라 손꼽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라고 하네요. /사진제공=신세계프라퍼티신세계 프라퍼티가 인수하기로 한 쉐이퍼 빈야드 전경입니다. 이런 와이너리 인수 과정에서도 현지 실사가 필요한데요. 담당자들이 인생 최고의 출장이라 손꼽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라고 하네요. /사진제공=신세계프라퍼티


와이너리는 인수합병(M&A)업계에서도 낯선 매물인데요. 이번에 신세계와 이 와이너리를 연결해준 자문사는 다름아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라고 합니다. 컨설팅사는 보통 M&A 과정의 아주 초반이나 끝에 전략을 세우기 위해 고용하는데요. 딜 자체를 맡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베인앤컴퍼니가 글로벌 자문업계 1위권에 해당하는 투자은행(IB) JP모건을 제치고 자문을 맡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JP모건은 신세계 그룹이 와이너리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나파밸리 내 다른 와이너리 인수를 제안했죠. 하지만 그 매물은 무려 1조 5000억 원 상당의 대형 와이너리였고, 신세계의 구미와 맞지 않았습니다. 그 틈을 꿰차고 들어간 베인앤컴퍼니는 미국내 막강한 네트워크를 동원해 신세계가 찾던 매물을 갖다 줬습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 2015년 밀라노 엑스포 현장을 방문해 와인매장을 둘러보는 모습입니다. 그는 와인 양조 지식까지 갖춘 전문가라고 하네요. / 정용진 부회장 페이스북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 2015년 밀라노 엑스포 현장을 방문해 와인매장을 둘러보는 모습입니다. 그는 와인 양조 지식까지 갖춘 전문가라고 하네요. / 정용진 부회장 페이스북



사실 신세계와 베인앤컴퍼니는 인연이 깊습니다. 2019년 이마트 수장으로 발탁된 강희석 대표는 베인앤컴퍼니에서 소비재와 유통 부문 담당 파트너로 신세계에 조언을 해주던 인물입니다. 그는 이마트에 온 이후 쓱닷컴 투자유치와 이베이 인수를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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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는 2008년 와인수입사인 신세계 L&B를 설립하고 2019년에는 이마트를 통해 4900원 초저가 와인인 ‘도스 코파스’를 자체 브랜드로 내놓았습니다. 이번에 인수한 쉐이퍼 빈야드의 대표 와인인 힐사이드 셀텍트는 국내에서 90만원대에 팔리는 고가 와인입니다. 신세계가 고급 와인 양조장에서 직접 와인을 생산해 고급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와인 유통을 강화해온 롯데 등 다른 유통사들도 긴장하게 되겠지요.

반면 굳이 와인 양조장까지 인수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와인의 종류는 수천가지이고, 고객군도 천차만별 입니다. 오히려 최대한 다양한 와인을 합리적으로 구비해 공급하는 경쟁에서는 몇 가지 와인만 생산하는 양조장을 사들이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신용평가는 신세계 프라퍼티의 쉐이퍼 빈야드 인수에 대해 연간 상각전 영업이익이 150억원에 불과한 와이너리를 3000억원에 인수한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인수 주체인 신세계프라퍼티와 사업 연관성도 크지 않다고 지적했고요.

한국신용평가가 분석한 신세계프라퍼티의 쉐이퍼 빈야드 인수 후 재무제표의 변화입니다. /자료=한국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가 분석한 신세계프라퍼티의 쉐이퍼 빈야드 인수 후 재무제표의 변화입니다. /자료=한국신용평가


그러나 업계 전반적으로는 와인 사업에 대한 투자가 꿈틀대는 조짐입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와인 사업을 하는 오너들이 지금이 정점이라는 판단에 매각을 저울질 하고 있다”고 귀뜸했습니다.

사조동아원 그룹이 보유한 와인 유통 업체 나라셀라는 신영증권을 주관사로 삼아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데요. 이 역시 그러한 투자 수요를 감지한 때문이겠지요. 다만 신영증권 측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는 입장입니다. 일부 IB 관계자들은 이 틈에 나라셀라를 매각으로 돌리려고 접촉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나라셀라는 국민와인으로 불렸던 몬테스 알파 등 120개 브랜드 500여종의 와인을 국내에 독점 공급하는 대표적인 유통사입니다. 프리미엄 와인숍 와인타임, 와인숍과 바를 겸한 하루일과, 아울렛 매장인 와인픽스를 직영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조동아원이 보유했다가 이희상 전 동아원 그룹 회장이 경영하는 미국 나파밸리의 와이너리인 ‘코도’ 역시 매물이 될 지 관심입니다. 사조그룹은 2016년 워크아웃 된 동아원 그룹을 인수하면서 코도도 같이 인수했고, 2017년 이희상 전 회장이 코도를 일부 되찾았습니다. 이 와이너리의 대표 상품은 ‘바소’라는 와인이라고 하는데요. 매물이 되기만 한다면 관심을 가질 주체가 여럿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입니다.

나라셀라가 운영하는 와인바인 ‘하루일과’ 입니다. 와인을 구매하거나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주거지 인근에 위치해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사진제공=나라셀라나라셀라가 운영하는 와인바인 ‘하루일과’ 입니다. 와인을 구매하거나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주거지 인근에 위치해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사진제공=나라셀라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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