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이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자금 회수에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가 SWIFT에서 퇴출되면 자동차·가전 등 러시아 판매 대금을 국내로 들여올 수 없고 수출 대금 회수도 사실상 막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과 러시아 간 거래는 사실상 중단 수순을 밟고 있다. 실제 국민·우리·신한 등 국내 주요 은행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튿날부터 선제 대응을 위해 신용장(LC) 개설을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원유를 비롯한 러시아산 원자재를 수입해온 기업들은 무역 거래가 사실상 ‘올스톱’됐다. 정유회사 관계자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최근 수일 사이에 20% 이상 빠졌지만 신용장 개설 거부 등 대금 결제 문제가 있어 아무도 거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7척과 기자재 등을 러시아에 공급하기로 계약한 국내 조선 3사도 6조 9970억 원에 달하는 대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EU의 합의로 러시아 은행의 SWIFT 배제가 결정되기 전부터 제재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 아래 은행들이 대금 결제를 막기 시작했다”며 “SWIFT 배제가 시작되면 자금 회수 길이 완전히 막혀버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와 거래가 많은 기업들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26일 오전까지 긴급 연락망으로 접수한 기업 현황에서도 대금 결제 중단 사례가 가장 많았다. 이날까지 총 30개 기업(35건)의 문제 상황이 접수됐는데 대금 결제는 전체의 42.9%에 달하는 15건이었다. 그다음은 물류(14건, 40.0%)였다. 자동차 부품 특수 기계 등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중소기업부터 가전 생산에 필요한 산업용 로봇의 배송 일정이 틀어지게 된 삼성전자까지 다양했다. 한 수출 기업은 무협에 “제재 지속 시 무역 대금 회수가 지연되고 현지 생산·판매법인의 본사 송금 제한 우려가 있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석 무역협회 현장정책실장은 “러시아를 향하는 선박의 운항이 완전히 멈춘 상황은 아니지만 선사 입장에서도 대금 결제가 막힐 것을 우려해 조심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생산에 필요한 부품이나 원재료를 제때 공급 받지 못하거나 루블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차손을 입을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달러화 결제 흐름이 차단되면 루블화로만 거래가 가능한데 이번 사태로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도 피해가 예상된다. 러시아 신차 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과 자동차 부품 업체, 삼성전자·LG전자 등 현지에 공장을 둔 기업들이 주로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했을 때 현대차는 대규모 환차손을 경험했다. 무협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러시아에서 달러와 유로 결제 비중은 약 83%에 달하며 루블화 결제 비중은 14.7%에 불과하다.
한편 27일 미국과 일본, 독일, 영국 등 세계 주요 7개국(G7)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에 대해 자산을 동결하고 러시아 은행들을 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데 동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