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했습니다. (확진자 투표는) 아무런 규정이 없습니다.”
지난 5일 전국에서 오후 5시에서 6시까지 시행된 코로나19 확진자들의 투표용지를 종이박스와 쇼핑백 등에 담아 대신 투표함에 넣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명이다.
논란이 불거진 5일 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6일 서울경제에 “선관위가 진행한 절차와 현행 법이 충돌하는데 법을 편의적으로 해석해 투표용지를 뺏어서 대신 집어넣어 버렸다”며 “규정이 없으니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날 국민의힘 의원들이 방문한 선관위에는 사전 선거일인데도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사무실에도 없었다. 대신 김세환 선관위 사무총장이 나서 항의 방문한 의원들에게 “법과 원칙대로 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의 해명도 법령을 따지면 근거는 있다. 현행 선거법에는 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한 임시 기표소의 운영과 관련된 아무런 규정이 없다. 대신 하위규정인 선거관리규칙 67조의 2에는 ‘감염병 환자 등의 선거권 보장(선거법 제6조의 3 제1항)’에 따라 임시 기표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선거법 151조는 ‘하나의 선거에 투표구마다 선거구별로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별도로 관리되는 확진자를 위해 투표함을 따로 만들 수 없으니 투표한 기표 용지를 현장의 관리인이 받아서 대신 투표함에 넣었다는 논리다. 규정이 없으니 확진자의 투표용지를 투표함으로 넣을 때 종이박스, 플라스틱 바구니 등 현장의 도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선관위의 이 같은 선거 관리를 두고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선관위가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헌법상 권리인 국민의 참정권 보장에 손을 놓았다는 지적이다. 헌법 제67조는 대통령 선거를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해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선거법은 헌법상 비밀투표 권리에 맞춰 모두 선거인이 직접 투표함에 기표 용지를 넣게 하고 있다. 선거법 157조(투표용지 수령 및 기표절차) 4항에는 ‘선거인은…투표용지를 기표한 후…투표참관인의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 158조(사전투표) 역시 4항에 ‘선거인은 …기표한 다음…사전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대목은 선관위가 확진자들이 투표한 기표 용지를 대신 수령할 권한이 법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선거법과 선거관리규칙 어디에도 유권자의 투표용지를 대신 투표함에 넣을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나아가 선관위가 근거로 대는 선거관리규칙 67조조차도 감염병 환자의 투표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적극적인 행위를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선관위가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동선을 달리해 선거인이 직접 투표함에 넣는 선거권(157조·158조)을 보장했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이유다.
하지만 선관위는 관리인이 유권자의 투표용지를 받아서 대신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법에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행위를 했다. 파장이 커지자 이날 대한변호사협회도 성명을 내고 “국민의 주권의지가 담겨 있는 기표 후 투표용지를 종이박스나 쇼핑백·바구니 등에 담는 등 허술하게 보관하고 선거보조원들은 유권자가 직접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것을 막고, 자신들이 대신 받아 처리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정치권은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공정·중립선거의 의무를 저버린 선관위가 선거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어서다. 36.9%라는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두고 야권은 ‘정권심판’, 여권은 호남의 높은 참여율을 들어 ‘단일화 역풍’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가 불씨를 지핀 ‘부정선거’의 불똥이 본선거로 튀어 투표율이 낮아지면 선거 판세가 더 불확실해지는 ‘태풍의 눈’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은 “코로나 확진자와 격리자 사전투표 관리는 몹시 잘못됐다”며 “(선관위의 해명이)이것을 해명과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선대회의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해 국민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