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韓 비우호국 지정에…가전·車, 결제대금 환차손 눈덩이[뒷북비즈]

러, 비우호국엔 루블화로 채무상환

화폐 가치 폭락…사태 장기화시 피해 ↑

수출대금 못 받은 中企 ‘시름’

팔라듐·니켈 등 가격 폭등 가능성도





러시아 정부가 한국을 비우호 국가로 지정하고 각종 제약을 가하면서 현지 진출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기업이 외화 채무를 러시아 루블화로 갚을 경우 추가 가치 절하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환차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러시아가 생산하는 주요 원자재 공급이 끊긴다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력 산업의 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7일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영국, 호주, 일본,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등을 비우호 국가로 지정했다. 또 비우호 국가에 채무를 지고 있는 자국 기업이 루블화로 갚아도 된다고 밝혔다. 미국달러당 루블화는 155루블까지 치솟으며 연초와 비교해 90%가량 가치가 폭락했는데,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무역 대금을 루블화로 받을 경우 막대한 환차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다른 나라와 교역 시 전체 결제액의 83.2%를 달러나 유로화로 한 반면 루블화 비중은 14.7%에 그친다. 국내 기업 상당수가 달러로 받을 돈을 부도 위기의 루블화로 받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현대자동차 등 현지에 생산 거점을 둔 기업들의 경우 이번 조치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규모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 생산해 바로 판매하는 체계를 갖춰 매입과 매출 모두 루블화로 결제해왔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에서 만들어 팔 때는 현지 통화 거래가 원칙”이라며 “장부상으로는 이익 규모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영업에 문제가 있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태 안정화 이후 이들 기업이 러시아 내 사업 확장을 시도할 때 정부 협조를 구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비우호 국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관련기사



수출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기업들은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 무협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7일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421건의 국내 기업 애로 사항이 접수됐는데 이 중 55.3%는 대금 결제 문제였다. 공장자동화 설비를 만드는 중소기업 A 사는 러시아 현지로부터 대금을 제때 받지 못했다. 일부 러시아로 보내던 선적 물량은 터키에서 발이 묶여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호소했다. 조용석 무협 현장정책실장은 “대기업은 루블화를 보유하다 장기적으로 가치가 회복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수출 대금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받더라도 환차손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비우호 국가 선정이 원자재 수출 통제로 이어져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국내에서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팔라듐은 러시아산의 비중이 33.2%에 달한다. 네온이나 제논·크립톤 등 반도체용 특수 가스도 러시아 수입 비중이 적지 않다. 업계가 보유한 재고량은 3~4개월 치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들 원료 수입에 차질이 생기거나 원재료 가격이 폭등할 우려가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덮개 등에 쓰이는 합성사파이어는 러시아산이 세계 시장의 40%를 차지한다. 러시아가 합성사파이어 수출을 제한하면 모바일·전자 기기 완제품 생산 차질이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일진디스플레이가 해당 소재를 생산하지만 러시아 비중이 상당해 전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니켈 등 배터리에 들어가는 원자재도 러시아 수출 제재의 영향권에 있다. 러시아는 세계 3위 니켈과 알루미늄 생산국이다. 국내 업체들이 러시아에서 니켈을 조달하지는 않지만 러시아산 공급이 줄 경우 니켈값 급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7일(현지 시간)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에 들어가는 니켈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62% 폭등한 4만 6850달러를 기록했다. 15년 새 최고 수준이다. 홍운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역 대금 결제 지연이나 환 변동성 확대 가능성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진혁 기자·김기혁 기자·강해령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