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옥상옥 탓 '국장급 장관' 양산…"개혁 더디면 '작은 靑' 공염불"

■'제왕적' 靑 대수술 예고

궁궐식 靑공간 해체-수평적 공간서 수시로 직원들과 소통

靑수석 폐지·축소-정무 등 일부만 남기고 보좌관급 전환

장관에 권력 분산-장관이 직접 공무원인사, 예산권도 검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산책하고 있다./성형주기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산책하고 있다./성형주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함께 물러나면 징계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청와대의 전언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검찰 공화국’으로 부를 정도의 권력을 쥔 검찰총장조차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을 통해 직접 압박을 받는 것이 현재 ‘제왕적 대통령제도’의 폐해다. 윤 당선인은 결국 직무에서 배제되기까지 했다. 장관급으로 대우받는 검찰총장마저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실무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재의 청와대 권력이다. 윤 당선인이 공약집 ‘정부 혁신’ 부문에서 “‘제왕적 대통령’은 궁궐식 청와대 구조의 산물”이라면서 “청와대는 명칭까지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명시하며 대수술을 예고한 것도 이 같은 폐해를 직접 겪은 게 영향을 미쳤다.

서울경제의 취재 결과 윤 당선인은 대통령을 에워싸고 ‘제왕’을 만드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규정된 법적 권한보다 더한 권력을 누리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제의 전면 폐지를 포함한 청와대 개혁안을 이미 보고받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청와대 개혁에 돌입하자 정치권은 윤석열 정부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실제로 해체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역대 정부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번번이 개혁에는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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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는 이명박(MB) 정부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MB 정부도 청와대 수석 등 ‘어공(정무직 공무원)’이 ‘늘공(관료)’을 압도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청와대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이었던 당시 ‘왕수석’으로 불렸다. 박 전 차관은 "(청와대에서) 한 달간 5000여 명의 인사 파일을 봤다”고 할 정도로 정부 인사에 광범위한 실력을 발휘했다. “인사는 대통령의 뜻”이라는 한마디면 모든 공무원이 숨죽였다. 또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은 정부 부처에서 청와대에 파견 나온 관료 출신의 차관급 비서관들을 향해 고함을 치기도 했다. 정권 실세였던 고(故) 정두언 전 의원이 “대통령 주변의 일부 인사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기 위해 ‘책임장관제’ 시행을 추진했다. 책임장관제는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인 장관이 국정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 장관이 부처의 최일선에서 일을 할 고위 공무원을 인사하고 성과에 따라 함께 책임지는 구조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역시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는 제왕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 전 의원조차 2014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청와대가 주도하는 외교정책을 두고 “청와대 얼라(어린이)들이 하는 거냐”며 따져 묻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월 책임장관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장관 여러분들이 법률이 정한 권한과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관가에는 경제를 책임지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조차 한 달에 한 번도 박 전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못 한다는 말까지 돌았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대면 보고보다 전화로 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김장수 안보실장이 청와대 비서관을 거치느라 보고가 늦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부동산 정책을 놓고 “부동산 문제에 정치 이념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며 “청와대와 크게 싸웠고 고성이 오갔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과거 정부의 실패 사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제왕적 대통령’를 반드시 수술하겠다는 입장이다. 윤곽이 드러난 개혁 방안만 봐도 강도와 범위가 가장 강하다. 우선 청와대라는 공간 자체가 사라진다.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을 시민과 호흡할 수 있는 도심인 용산 국방부로 옮길 예정이다. 장소뿐 아니라 업무 공간 자체가 수평적으로 바뀐다. 현재의 청와대는 ‘옥상옥’인 수석들이 있는 여민관과 대통령 집무실 간의 거리가 약 500m다. 윤 당선인은 미국 백악관과 같이 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수시로 보고받은 체계로 집무 환경을 개편한다. 나아가 수석들 자체가 최소화된다. 청와대는 현재 대통령비서실장 산하에 정무·국민소통·민정·시민사회·인사 등 5명, 정책실장 산하에 일자리·경제·사회 3명 등 모두 8명의 수석비서관을 두고 있다. 윤 당선인은 8명의 수석을 전면 폐지하거나 정무와 국민소통 등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보좌관급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개혁의 백미는 책임장관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윤 당선인은 민정수석실을 폐지해 인사 검증 권한을 놓겠다고 밝혔다. 장관들이 직접 고위 공무원을 임명하는 방안과 기재부가 아니라 각 부처 장관이 예산권을 가지는 복안도 검토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의 힘을 빼고 장관들이 권한을 갖게 하는 것이다. 대신 장관과 고위 공무원 모두 국정에 책임을 지는 구조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인사권을 장관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인사권이 없으면 또 청와대에 줄을 서게 된다”고 말했다.


구경우 기자·신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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