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재테크

재판부 성향 따라 뒤바뀐 판결…금융권 경영공백 현실화되나

■ 함영주 DLF 소송 패소 후폭풍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놓고

8개월전 손태승 판결과 달라

CEO 공백 등 경영 부담 커져

피해는 기업·주주에 고스란히





법원의 엇갈린 판결에 금융권의 경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출금의 부실화 위험 등 현안이 쌓여 가는 가운데 사법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금융권 전반에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8개월 전과는 전혀 다른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의 파생결합상품(DLF) 재판 결과가 금융권 전체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금융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1심 재판부가 제시한 판결 근거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큰 만큼 재판부가 바뀌는 상급심에서는 또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다만 재판부마다 다른 판결은 사법 리스크로 인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며 금융사에는 최고경영자(CEO) 공백 등의 경영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90% 비슷한 사건…판결은 정반대”

지난 1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함 부회장과 하나은행 등의 업무 정지 등 처분 취소 소송에서 금융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하나은행이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하나은행이 내부 통제 기준은 마련했지만 실효성이 없고 책임은 당시 은행장인 함 부회장에게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불과 8개월 전 같은 법원 행정11부는 금감원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내린 ‘문책 경고’를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의 해석·적용을 그르쳤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의 엇갈린 판결 핵심은 내부 통제 기준의 ‘실효성’에 있다. 손 회장 사건에서는 실효성 자체가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함 부회장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핵심적 내부 통제 기준이라고 규정했다. 실효성이 없다면 기준이 있어도 의무를 이행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이번 재판부가 결과만으로 내부 통제 기준의 실효성을 판단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형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실효성은 결국 결과만 놓고 내부 통제 기준의 실효성을 판단한 것”이라며 “음주운전을 금지하는 법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하게 된다면 해당 법은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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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따라 바뀌는 판결, 피해는 기업과 주주에”

재판부에 따라 매번 다른 판결의 피해는 기업과 주주에게 전가된다.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대표적이다. 2019년 이후 통상임금 관련 소송의 핵심 쟁점은 ‘신의칙(신의성실 원칙)’이었다. 신의칙은 근로자가 요구하는 지급액이 과다해 회사 경영상 어려움이 있거나 기업 존속에 위기를 초래할 경우 지급 의무를 제한할 수 있는 요건이다. 하지만 신의칙 인정 여부에 관한 법원 판단은 일관성을 상실했다. 아시아나항공·한국GM·만도 등의 1·2심 판결이 달랐고, 지난해 금호타이어와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은 법관의 판단에 따라 1·2·3심 모두 다른 판결이 내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은 기존의 신의칙 판단 기준을 더욱 좁게 해석했다”며 “급변하는 경제 환경을 기업의 경영자가 예측해 경영 악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라고 말했다.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바뀌는 판결은 기업과 주주에게 피해를 떠넘긴다. 현대중공업그룹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통상임금 판결로 거액의 충당금이 쌓여 1조 384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함 부회장에 대한 판결 역시 주주들에게는 악재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CEO 선임이 법원 판단 결과에 따라 제때 이뤄지지 못할 경우 경영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직원 일탈마저 CEO가 책임져야 하나”

올 초 산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큰 혼란을 겪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가 안전사고·인명사고에 대한 적절한 사전 조처를 취하지 않았을 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하지만 법에서 명시한 의무 규정이 모호하고 적용 대상도 지나치게 넓어 과잉 처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예컨대 건설 현장에서 반드시 보호장구를 착용하도록 한 규정을 만들고 장비들을 마련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근로자가 자신의 편의로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사고를 당했다면 사업주가 수사보다 과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법상의 선의의 조치라는 표현은 과도하게 모호하다”라며 “결국 수사 당국이나 사법 당국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이번 함 부회장 소송 역시 중대재해처벌법과 닮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방지를 위해 규정을 마련하고 교육 등을 실시하는 등의 노력을 했음에도 판매 창구 직원이 규정을 미준수해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최고경영자가 지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에 대한 지적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조문 등 법정 사항을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아 상급심에서 다퉈 볼 여지가 많아졌다”며 “항소심에서는 다른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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