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30·토트넘)이 첫 골을 터뜨린 뒤 입에 검지를 댄 채 이른바 ‘쉿 세리머니’를 펼쳤다. 부진의 늪에 빠진 것 아니냐는 현지 매체들의 비판에 짧고 굵은 메시지를 보낸 듯했다. 두 번째 골을 넣은 뒤에는 공중에서 주먹을 뻗으며 한껏 포효했다. 팬들은 이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손흥민은 달아오른 골 감각을 대표팀으로 가져와 ‘숙적’ 이란의 골문을 겨냥한다.
2021~20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막판 4위 경쟁의 첫 번째 분수령인 웨스트햄전에서 손흥민이 멀티 골을 폭발하며 토트넘의 3 대 1 승리를 이끌었다. 한 경기 2골은 올 시즌 처음이다. 21일(한국 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30라운드 홈경기에서 손흥민은 1 대 0이던 전반 24분 해리 케인의 침투 패스를 받아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왼발 슈팅을 골망에 꽂았다. 2 대 1이던 후반 43분에는 골킥을 케인이 머리로 연결하자 손흥민이 빠른 돌파로 골키퍼와 1 대 1 기회를 만든 뒤 오른발로 쐐기 골을 마무리했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은 후반 추가 시간에 손흥민을 벤치로 불러들이며 꽉 껴안고 몇 초간 놓아주지 않았다.
3 대 1 승리로 리그 2연승을 달린 토트넘은 7위에서 5위(승점 51·16승 3무 10패)로 올라섰다. 한 경기를 덜 치른 4위 아스널(승점 54)에 3점 차로 접근하며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마지노선인 4위 등극의 희망을 부풀렸다. 웨스트햄은 7위(승점 48)로 내려갔다.
최근 원정 2경기에서 침묵했던 손흥민은 이날 리그 12·13호 골로 올 시즌 공식 경기 기록을 14골 6도움(유로파 콘퍼런스 1골 1도움 포함)으로 늘렸다. 성인 무대 통산 200골(클럽 170골·A매치 30골) 고지도 밟았다. 지난 2010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럽 무대에 데뷔한 손흥민은 함부르크에서 20골, 레버쿠젠에서 29골을 넣었고 2015~2016시즌부터 뛴 토트넘에서 121골을 기록했다. A매치 30골을 더해 총 577경기 200골이다.
손흥민은 대표팀에 합류해 오는 24일 이란과 홈경기, 29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정으로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 일정을 마감한다. 한국은 조 2위를 확보해 이미 본선행을 확정했지만 이란을 넘고 1위에 올라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각오다. 멀티 골로 어깨를 편 손흥민이 당연한 선봉이다.
손흥민은 EPL 전체 득점 공동 2위(13골)로 올라갔다. 무함마드 살라흐(20골·리버풀) 다음이고 디오구 조타(리버풀)와 동률이다. 12골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케인, 사디오 마네(리버풀)를 내려다보고 있다. EPL 홈 경기 득점만 따지면 손흥민이 10골로 올 시즌 1위다.
경기 최우수 선수 선정도 총 9회로 살라흐(12회)에 이어 2위다. EPL 공식 홈페이지가 팬 투표로 뽑는 ‘킹 오브 더 매치’에서 손흥민은 이날 54.6%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 선정 횟수에서 호날두(8회)를 앞질렀다. 최근 2경기에서 6.5점, 6.6점에 그쳤던 후스코어드닷컴 평점은 8.7점까지 올라가 양 팀 최고를 기록했다.
손흥민은 “A매치를 앞두고 승리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케인이 오늘 내게 2개의 도움을 줬으니 다음에는 내가 케인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PL 최다 골 합작 기록을 보유한 손흥민·케인 듀오는 합작 득점을 39골로 늘렸다. 이 중 20골은 케인의 도움으로 손흥민이 넣은 득점이다. 손흥민은 “경기장 밖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똘똘 뭉쳐 서로 도와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