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지브러리] '결말 잘린 채 상영?' 중국 입김에 변질돼 가는 헐리우드 영화 산업

영화 ‘파이트 클럽’, 텐센트서 결말 시퀀스 삭제된 채 상영돼

중국 내 영화 검열, 2018년부터 공산당 중앙선전부로 이관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거대한 박스 오피스' 때문

해외 영화 수입 편수 통제해 온 중국, ‘내수용' 박스 오피스 구축 적극적



피겨스케이팅 도핑 파문 등 각종 논란이 일었던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당시 중국에서 개봉한 한 영화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영화는 한국 선수들을 반칙왕으로 묘사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소재의 영화 ‘날아라 빙판 위의 빛’이 개봉했다. 당시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개최국 중국을 향한 편파 판정 논란으로 ‘반중 감정’이 뜨거워진 상태에서 이런 내용의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영화를 비판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또, 지난 2월엔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중국 최대 흥행작 ‘장진호’의 속편 ‘장진호의 수문교’가 개봉했다. 영화 안에서 중국은 마치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처럼 묘사돼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이처럼 최근 들어 중국은 엄격한 검열을 기반으로 자국 선전 영화 중심의 ‘내수용’ 박스 오피스를 구축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검열로 중국 시장에 진입한 해외 영화들이 ‘결말 삭제', ‘줄거리 변경’ 등의 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파이트 클럽’, 텐센트서 결말 시퀀스 삭제된 채 상영돼 ‘논란’



실제로 지난 1월엔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파이트 클럽’의 결말이 5분 가량 삭제된 채 텐센트에서 상영되고 있는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텐센트에 올라온 파이트 클럽은 원작에서 12분이 줄어든 상태로 상영되고 있었다. 특히 결말 부분에선 주인공이 총을 쏘는 장면과 건물 폭발 장면 등이 삭제되고 암전된 화면이 등장했다.

사진=텐센트사진=텐센트




검은색 화면 위론 ‘주인공이 제공한 단서를 바탕으로 경찰이 테러 계획을 파악해 모든 범죄자를 체포했다’는 결말이 텍스트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 결말은 제작사가 삽입한 것이 아니었고 원작의 내용과도 거리가 멀었다. 영화의 중요한 시퀀스를 삭제한 것 뿐 아니라 엔딩을 바꿔버린 플랫폼 측에 파이트 클럽 작가 ‘척 팔라닉’은 “중국에선 모두가 해피 엔딩을 맞았다”며 조롱하는 트위터를 올리기도 했다. 네티즌들도 중국이 완전히 다른 결말을 창조해낸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글을 다수 올리기도 했다.

중국 영화 검열에 직·간접적 영향 받은 해외 영화 다수



위에서 언급한 ‘파이트 클럽’ 같은 사례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강력한 중국의 문화 검열로 인해 중국 박스 오피스에 진입하려다 철퇴를 맞은 해외 영화들은 상당히 많다. ‘지브러리’에서는 해당 영화들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눠봤다. 영화 속 어떤 요소가 검열의 원인이었는지 함께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중국 내 영화 검열 담당 기관 및 검열 기준은?



이러한 중국의 영화 검열은 공산 당 하의 통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2018년까지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 내 영화 검열 기구에서 담당했다. 광전총국은 중앙행정기관인 국무원의 직속 기구로 중국의 언론을 감독하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언론 탄압, 검열 기관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 내에 상영되는 모든 영화의 장면은 이 검열 기구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중국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배급사 리더 필름이 나오기도 전에 용표가 붙어 있는 녹색 화면이 등장하는데 이 용표는 공영 허가증, 상영 허가증을 뜻한다. 검열 기구의 허가를 받은 영화라는 의미다.

이러한 광전총국 내 영화 검열은 2018년부터 공산당 중앙 선전부로 이관됐다. 행정기관에서 담당하던 영화 사상 검열과 외국 영화 교류 업무 등을 공산당이 직접 시행함으로써 이전보다 영화 산업에 대한 당 차원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에선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검열할까? 영화 검열기구는 ‘영화관리조례 제 24조’에 근거해 모든 영화의 배급, 상영, 수입, 수출에 대해 사전 검열을 실행하고 있다. 공식적인 영화 검열 기준으로는 10가지의 금지 기준과 9가지의 편집, 수정 기준을 가지고 있다. 기준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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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한·중 영화산업 협력 방안 (KIET 산업연구원)자료 출처 = 한·중 영화산업 협력 방안 (KIET 산업연구원)


정리하자면 현재 중국 공산당은 ‘폭력, 외설, 종교, 외계인, 미신, 도박, 음주, 약물 남용, 범죄 같은 반사회적 비과학적 주제, 공산당 비방, 중국의 정치적 체제를 비난하는 정치적 주제’ 들에 엄격한 검열을 진행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이 같은 기준들 때문에 상영 취소, 줄거리 변경 등의 ‘제재’를 받게 된 것.

'거대한 박스 오피스 규모' 때문에 포기하기 힘들어



해외 영화 제작자들은 이 까다로운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이미 완성된 영화를 별도의 인원과 비용을 들여 후편집을 진행하는 실정이다. 영화 관계자들에게 중국 박스 오피스는 어마어마한 수익과 흥행 실적을 안겨다 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약 14억 명이라는 막대한 인구를 배경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스 오피스 시장을 가지고 있다. 2019년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2020년부터 중국이 1위로 치고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여파에도 중국 박스 오피스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중국의 ‘신랑 재경’ 등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박스 오피스의 티켓 판매 규모는 약 8조 5000억 원, 스크린 수는 8만 2248개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2021년 한 해 동안 584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3254개의 스크린 수를 가졌던 것을 감안해 본다면 중국의 박스 오피스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 지 체감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 박스 오피스 규모 덕분에 할리우드 영화는 자국에서 혹평을 받아도 중국에서 흥행해 떼 돈을 벌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 ‘트랜스포머4’가 그러했다. 트랜스포머4는 기획 단계부터 제작사인 파라마운트가 중국 관영 영화 채널과 공동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중국 영화 시장을 지나치게 의식해 스토리가 엉성하다는 여러 혹평을 받았다. 영화 속 로봇 연구 개발 부서는 개연성 없는 논리로 모두 중국으로 이전하고 등장인물들은 악당에 맞서 열심히 도망치는 순간에도 계속 중국산 팩 우유를 섭취한다. 낮은 완성도 탓에 로튼 토마토 지수 17점을 받는 등 혹평이 쏟아졌지만 개봉 첫 주 중국에서만 9,000만 달러를 벌었다. 트랜스포머4는 이후 중국에서만 약 3억 달러를 벌었는데 북미 시장 다 합쳐 2억 4000만 달러를 벌었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영화 제작자들이 중국 박스 오피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해외 영화 수입 편수 통제해 온 중국, ‘내수용' 박스 오피스 구축 적극적



진입만 성공하면 흥행 수익을 안겨다 줄 것 같은 중국 박스 오피스. 하지만 들어가고 싶다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중국 정부가 외국 영화의 수입 편수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입은 ‘차이나 필름’과 ‘화샤’라는 2개의 국영 기업에서 담당하고 있다.

중국의 영화 수입 방식은 크게 분장제와 매단제로 나뉜다. 분장제는 판권 소유자가 배급권을 팔지 않고 배급 중개 경영을 위탁해, 사전에 이뤄진 협약 하에 제작-배급-상영의 주체가 영화 흥행 수입을 나누어 갖는 배급 방식을 말한다. 매단제는 중국의 배급 회사가 제작 주체에게 배급권을 사는 것을 말한다. 이때 제작 주체는 배급권을 이미 팔았기 때문에 흥행 수익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허용하는 분장제 방식의 영화 수입은 연간 34편 수준이다. 이는 과거에 비해 많이 완화된 수준이다. 중국은 지난 1994년부터 연간 10편의 해외 영화 수입만 허용해오다 2002년 WTO 가입을 계기로 10편에서 20편으로 확대시켰고, 2012년 바이든이 시진핑과 협상을 진행해 34편으로 증가 시켰다. 매단제의 방식으로는 연간 20편 정도의 영화를 수입하고 있다. 정확한 규제 수량은 공표하지 않았지만 국가 당 3편 이상을 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중국 박스 오피스는 미중 무역 갈등 이후 중국 체제를 공고화 및 선전하는 자국 영화 위주로 개봉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좁은 중국 박스 오피스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일부 제작자들은 영화 스크립트 제작 과정부터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것들을 배제하고 중국에 우호적인 장면들을 일부러 집어넣어 친중 성향이 짙은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위적으로 중국 캐릭터와 공간, 상품들을 영화 속에 배치하는 친중 성향적 영화 제작 방식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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