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꺾여 말라죽어가면서도 추구한 '권진규의 예술'

'권진규 탄생 100주년-노실의 천사'展

서울시립미술관서 24일부터 5월까지

유족 141점 기증…총 240여점 전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권진규의 1967년작 '지원의 얼굴'. 권진규의 대표작으로 교과서에도 소개될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권진규의 1967년작 '지원의 얼굴'. 권진규의 대표작으로 교과서에도 소개될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절지(折枝)여도 포절(抱節)하리다. 포절 끝에 고사(枯死)하리라.”



조각가 권진규(1922~1973)가 1972년 한 일간지에 발표한 글 ‘노실(爐室)의 천사를 작업하며 봄, 봄’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지가 꺾일지언정 절개를 지키고 그러다 말라 죽으리라 외치는 것인데, 외로운 예술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리라 스스로 다짐하는 말이기도 했다. 권진규의 이 글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하면서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 까막까치가 꿈의 청조(靑鳥·파랑새)를 닮아 하늘로 날아 보내겠다는 것이다”로 마무리 되었건만, 작가는 이듬해 성북구 동선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과 일본 조각사(史)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한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과 유족의 대규모 작품 기증을 기념하는 전시가 24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막한다. 전시 제목 ‘노실의 천사’는 권진규가 쓴 글에서 따 온 것으로, ‘가마가 있는 방‘을 의미하는 ‘노실’의 천사는 그가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예술 그 자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권진규의 여동생 권경숙씨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1953년작 '기사'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권진규의 여동생 권경숙씨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1953년작 '기사'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는 권진규의 1950년대 주요 작품부터 1970년대 전성기 작업까지 아우르는 조각, 회화, 드로잉, 아카이브 등 총 240여 점을 선보인다. 출품작 수로는 최대 규모다. 여기에는 지난해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이 기증한 141점의 작품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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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는 흔히 리얼리즘 조각가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 그가 추구했던 것은 사실적인 것이나 아름다운 대상이 아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과 영원성’이었음을 작품을 통해 헤아릴 수 있다. 작가는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전시구성은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해 1947년 성북회화연구소 시절부터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 유학과 현지에서의 성공 등의 ‘입산(1947~1958)’, 손수 아틀리에를 짓고 수행자처럼 작업하며 반구상의 부조작품과 독자적 여성 흉상을 만들던 ‘수행(1959~1968)’, 전통재료인 건칠을 이용하고 불교에 침잠했으나 원하는 일들이 무산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안(1969~1973)’으로 크게 나뉜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권진규는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확고하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라며 “그의 작품에 내재한 동시대적 의미를 편견 없이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5월 22일까지 열리며 7월 26일부터는 광주시립미술관으로 옮겨가 10월 23일까지 순회전을 이어간다.

권진규가 1969~70년에 제작한 '자소상'은 고려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권진규가 1969~70년에 제작한 '자소상'은 고려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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