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인플레·경기위험 동시 확산 우려…균형 있는 통화정책 고민"

■정책구상 내비친 이창용 한은 차기총재

금리인상 가속땐 경제회복 찬물

속도 늦추면 한미금리 역전 우려

"성장·물가 다 잡도록 최선의 노력"

과거 세미나·언론 인터뷰 등선

"과도한 국가부채 큰 위협" 경고도





이창용(사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24일 우리 경제에 대해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인플레이션과 경기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로 유가와 환율이 모두 치솟으면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현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인식을 같이한 발언이다. 이 후보자는 다음 달 취임 후 본인이 키를 쥐게 될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성장과 물가, 금융 안정을 어떻게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정책을 운영해나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지난해 선제적 금리 인상을 통해 코로나19 위기로부터 발 빠른 출구 전략에 나서고 있지만 대외 돌발 변수로 경기 침체의 우려도 커지는 만큼 통화와 재정 정책의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 후보자는 이날 한은을 통해 배포한 지명 소감에서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중국 내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중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어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난 8년여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지금 처해 있는 여러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금통 위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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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자의 진단대로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고 러시아가 에너지 판매 대금으로 루블화만을 받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말 1862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 시한폭탄이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대내외 악재가 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통화정책의 타이밍이 중요한 시기다.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기조에 발맞춰 금리 인상의 가속페달을 세게 밟다가는 자칫 경제 회복의 불씨를 꺼뜨릴 수 있고, 그렇다고 마냥 속도를 늦췄다가는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 통화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이 후보자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후보자 역시 그동안 세미나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통화와 재정 정책의 미세조정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올 1월 EY한영이 개최한 신년 경제전망 세미나에서도 “한국은 경기 회복세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다”며 “물가 안정, 경기 회복, 자산 가격 조정의 연착륙 등 상이한 목표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통화와 재정 정책의 섬세한 공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후보자가 지명 소감에서 통화 정책의 고려 요인 중 하나로 ‘성장’을 언급하면서 당장 한은의 금리 인상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경기에도 신경 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후보자는 국가 재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해왔다. 그는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부채가 급증하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고 이탈리아는 국가 부도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며 “우리도 선진국이 됐으니 국가부채를 크게 늘려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꼬집었다. 한국경제연구원과 IMF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2020년 47.9%에서 2026년에는 66.7%까지 치솟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큰 폭(18.8%포인트)의 상승세다. 한발 더 나아가 국회예산정책처는 국가부채비율이 2030년 75%를 넘어 2040년에는 104%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는 “2040년보다 더 빠른 시점에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재정 여력이 있으니 더 써도 된다고 주장하는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무엇보다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게 이 후보자의 지론이다. 그는 내외신 인터뷰 등을 통해 “IMF가 권고하는 확장 재정의 핵심은 코로나19 방역 대책으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 등 특정 계층을 정조준한 재정 지원”이라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나눠준 한국의 재난지원금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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